빚더미 위의 그리스가 5일 채권단의 협상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했다. 그리스 국민은 예상 밖의 개표 결과가 나오자 광장으로 몰려나와 환호했지만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유로존 국가들이다. 이들은 7일 긴급 정상회담을 열어 3차 구제금융 지원을 거부하고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떠밀지, 아니면 새 협상안을 놓고 타협할지를 논의한다. 그리스 국민은 벼랑 끝에 섰다.
그리스가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하는 ‘간 큰’ 채무자가 된 것은 400년간의 오스만튀르크 지배에서 1821년 독립한 뒤 절반을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로 보낸 역사와 무관치 않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국민정서가 퍼져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 되면 국제 채권단도 약 1조 유로의 손실을 보게 된다. 채권단이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리스 국민은 1월 총선에서 ‘유로존 잔류, 긴축안 반대’를 내건 급진좌파연합에 승리를 안겨줬고, 이번엔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내민 ‘자살유서’에 서명한 셈이다.
폴 크루그먼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2010년 이후 구제금융 대가로 강력한 긴축프로그램을 실행해온 그리스가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지나친 긴축으로 경제 자체가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분에 안 맞는 소비, 세입을 능가하는 세출을 계속하는 태도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퍼주기식 복지를 시작했고 국민은 당근에 맛을 들였다. 2001년 유로화 가입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서유럽처럼 임금을 2배 이상, 최저임금을 70%가량 올리면서 부채비율이 급격히 늘었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선진국이 됐다는 착시 현상에 빠져 흥청망청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타락한 정치가 타락한 국민을 낳은 것인지, 타락한 국민이 타락한 정치를 낳은 것인지는 답하기 어렵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많이 나와야 채권단과의 협상에 유리하다”고 강조했을 뿐, 반대표가 유로존 탈퇴를 의미한다는 진실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 국민은 설령 그렉시트가 돼도 유로존 잔류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속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렉시트는 그리스의 정상화를 더욱 늦추는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를 보면서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가 산다는 점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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