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청소년이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게시글 13만 건을 분석한 빅데이터는 그들이 쓰는 언어뿐 아니라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마음속 고민과 상처는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12일 ‘청소년의 언어 실태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위원회가 소셜분석업체 메조미디어와 함께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 13만2244건을 분석한 자료다. 해당 사이트는 네이트 판 10대 게시판, 인스티즈, 앱짱닷컴 등이다. 위원회는 게시글을 주제별로 욕설(18.9%), 은어(10.2%), 상처(1.3%), 폄하·비하(1%), 왕따(0.9%), 기타(67.7%) 등으로 분류했다. 기타 글은 “게임하러 갈래”처럼 특정 주제가 없는 일상적 내용이나 짧은 단문이다.
○ “문장 전체 읽어도 의미 해석 어려워”
청소년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는 ‘존나’(6111건)였다. 이어서 ‘새끼’(5537건) ‘좆’(4767건) ‘씨발’(4031건) ‘시발’(3667건) 등 순이었다. ‘ㅁㅊ’(미친) ‘ㅂㅅ’(병신) ‘ㅅㅂ’(시발) 등 초성만 사용하거나 ‘씌바’처럼 맞춤법을 변형해 사용하기도 했다. 인터넷 업체의 욕설, 비속어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욕설의 대상은 친구(48%)가 가장 많았다. 이어서 불특정 여성(15%)과 남성(10%)이었다. 가족 중에선 엄마(5%)를 향한 욕이 가장 많았다. “시발 내가 우리 엄마 성격을 많이 닮아서 떽떽거리고 하는데 엄마는 나보다 훨씬 심함” 등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온 욕이 다수였다. 동생, 아빠는 각각 3%였다.
청소년이 쓰는 은어는 종잡을 수 없이 다양했다. ‘ㅂㄷㅂㄷ’(부들부들) 같이 초성만 사용하거나 ‘열폭’(열등감 폭발)처럼 단어나 문장을 줄여 썼다. 최근엔 ‘낫닝겐’처럼 영어 ‘Not’과 일본어 ‘닝겐(にんげん·인간)’을 합치는 외국어 조합 유형도 발견됐다. 위원회는 “영어 어그레시브(aggressive)에서 나온 ‘어그로’(관심 끌기)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은어는 맥락을 모르면 그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며 “기성세대는 문장 전체를 읽더라도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사무총장은 “청소년이 사용하는 언어 중 은어와 욕설이 3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청소년 스스로 언어를 순화하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서툰 감정 표현 ‘그냥 죽고 싶다’
청소년의 언어 속에는 그들의 아픔과 고민도 진하게 묻어났다.
상처 관련 글에선 ‘자살’(692건)이 다른 표현에 비해 많이 등장했다. “자살하거파 짐 다 내려 노코” “자살하고 싶다 내년엔 죽어 있길”처럼 자살을 쉽게 입에 올렸다.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자살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살 다음으로 ‘ㅠㅠ’(436건) ‘싫어’(156건) ‘잘못’(145건) 등이 많이 등장했다.
한혜원 밝은청소년 부장은 “청소년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극심한데 가족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 풀기가 쉽지 않다”며 “소통이 잘되지 않으니 감정 표현도 서툴러 ‘그냥 죽고 싶다’란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비하할 땐 ‘앰창인생’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 ‘앰창’이란 어머니를 성매매 여성에 비유하는 은어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직업을 폄하할 때도 ‘앰창인생’이란 딱지를 붙였다.
타인이나 자신을 폄하·비하하는 소재로는 ‘외모’(77.1%)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돼지, 뚱뚱 등이 많이 등장해 비만에 대한 고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왕따 관련 글의 40.6%에선 ‘괴롭히다’ ‘힘들다’ ‘무섭다’ 등 직접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표현이 확인됐다. “진정걸고 왕따 탈출하고 싶다. 제발 진짜 개절실”처럼 절박함이 묻어났다. ‘성격’이란 단어도 자주 등장해 청소년들이 왕따 문제의 원인을 성격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왕따와 관련해 주로 ‘엄마’와 ‘선생님’이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볼 때 청소년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양측에 호소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관심종자가 싫어요”
청소년이 가장 ‘극혐’(극도로 혐오)하는 대상으론 ‘관심종자’가 꼽혔다. “관심종자는 극혐 오브 극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심종자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번 조사에서 벌레, 오타쿠(마니아) 등보다 더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철상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미성숙 단계인 청소년은 어른의 보호를 확인하기 위해 관심을 필요로 하니 ‘관심종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며 “그들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면 청소년들의 독특한 표현 양식을 적절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