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환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게 사퇴의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세월호 특조위 준비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위원들끼리 ‘세월호 진실 규명’을 논의한 적이 없다”며 “최소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보자고 건의해도 묵살됐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은 전격 사퇴에 따른 후폭풍을 묻자 “내가 감당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임명 당시부터 ‘친박(친박근혜)’ 논란에 시달렸다”며 “성향을 떠나 해야 하는 일을 했고, 그게 안 되니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은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을 지냈다. 정부는 조 부위원장의 사퇴를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특조위가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 근거는….
“하는 일이 없었다. 은폐된 진실이 있으면 1년 동안 세월호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다른 위원들에게 법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특조위 차원에서 의견서를 제출하자고 주장했다. 거기에 대해선 답변 없이 특조위 인원과 예산 관련 안건만 전체회의에 올라왔다.”
―특조위에 몸담다 해체 주장까지 하는 건 과격하지 않나.
“한 상임위원이 ‘우리 위원회가 세월호 청문회라도 열어 보자’는 의견을 냈다. 거기에 야당이 추천한 다른 위원은 ‘조금이라도 활동하면 활동 기간에 산입된다. 우리 입장은 최대한 활동 기간을 늦추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 특조위는 진실이 아니라 정치 투쟁의 ‘재료’를 만들고, 이를 끌고 가는 조직으로 변질됐다.”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은 정부 여당과 야당이 다투는 갈등 소재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의 활동기간은 구성을 마친 후 1년으로, 한 차례만 6개월 동안 연장할 수 있다. 특조위 측은 “인력 구성이 끝나지 않은 만큼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위원 임명장 수령일인 3월 5일을 기준으로 잡았다가 1월 1일로 바꿨다. 여기에 정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서 특조위 조사 1과장을 ‘검찰’로 못 박은 부분도 논란을 키웠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아니면 뭘 했나.
“언제 진도 팽목항을 갈지, 언제 경기 안산을 갈지 일정을 조율했다. 그 다음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바꾸기 위한 투쟁 방법을 논의한다. 그게 공식 안건이다. 모든 것을 ‘위원장 권한’이나 ‘다수결’로 결정했다. 임명장을 받은 후 처음 한 일도 팽목항 방문이었다.”
―특조위가 ‘유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특조위는 특별검사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 진정한 진상 조사를 위해서는 유족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유족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란 뜻이다. 미국의 9·11테러 진상조사위나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 진상조사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석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조위 위원장은 특별검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특조위 구성 확정 후) 6개월 동안 이석태 위원장으로부터 세월호 진상 조사 방법이나 제도 개선과 관련된 고민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세월호 시행령에 반대해 ‘장외 투쟁’을 하는 게 장관급 조사위원장이 할 일은 아니다.”
―이번 사태로 조 부위원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수 있다.
“각오한다. 정부에 이미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만류했다. 어느 쪽에서든 환영받지 못할 결정임을 안다. 하지만 국민 사이에 ‘세월호 피로감’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특조위를 이념과 정치색을 떠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독립 조직으로 만들 길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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