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법관 - 로스쿨생, 중-고교 찾아 눈높이교육
7개팀, 학생 자치법정 출장지도… 생활법 강연에 대입-진로 상담도
13일 서울 은평구 불광중 소강당에서 학생자치법정 개최를 앞두고 학생들이 장원지 서울서부지법 판사(오른쪽)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요즘 재판정에는 법봉이라고 부르는 나무 방망이는 없어요.”
평상복 차림의 장원지 서울서부지법 판사(33)가 웃으며 말했다. 자주색 띠가 들어간 정식 법복까지 차려입은 학생들이지만 그건 미처 몰랐다.
“헐….” “그러면 손으로 두드려요?”
말로 판결 내리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장 판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중학교 소강당에서는 이 학교 로스쿨 동아리 학생 20여 명이 15일 열리는 학생자치법정 준비에 한창이었다. 제헌절(17일)을 앞두고 열리는 자치법정은 교칙을 어겨 벌점을 받은 학생을 학생들 스스로 처벌하면서 사법 절차를 배우는 교육 과정이다.
이번에 자치법정에 넘어온 사건은 ‘교복 미착용’처럼 비교적 가벼운 교칙 위반 사례들. 조용하게 진행되던 리허설은 장 판사와 로스쿨 학생 3명이 등장하면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서울서부지법이 올해 현직 판사 7명과 인근의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42명으로 7개 팀을 짜 관내 학교에서 시작한 청소년 법 교육 프로그램의 첫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현직 판사가 로스쿨 학생과 함께 매월 학생을 지도하는 법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치법정은 미리 짠 시나리오를 참고해 진행하지만 중학생들이라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장 판사는 “형사 소송이기 때문에 ‘피고’가 아니라 ‘피고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알려줬고 서강대 로스쿨 1학년 조성배 씨(28)는 “엄연히 정식 재판이니까 웃지 말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하자”고 했다. 조언을 귀담아듣던 재판장 3학년 김준범 군(15)은 “작은 부분까지 엄격히 지적하는 것을 보며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이날 교육에 나선 장 판사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잘못에는 법의 심판이 뒤따른다는 것과 심판은 공정하고 엄격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법 교육이 프로그램의 전부는 아니다. 리허설이 끝나자 로스쿨생들에게 공부 방법과 진로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자치법정에서 변호사 역할을 맡은 3학년 문형배 군(15)이 가고 싶은 고교가 있는데 입학 경쟁이 치열해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하자 이화여대 로스쿨 1학년 변지혜 씨(27·여)는 “목표를 갖고 준비한 것들은 설혹 일반고에 간다고 해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검사가 되고 싶다는 자치법정 검사 3학년 한유정 양(15)에게는 이화여대 로스쿨 1학년 서지혜 씨(25·여)가 전공 선택에 대한 조언을 했다.
서울서부지법의 나머지 6개 팀도 이달부터 각자 맡은 중고교에서 법 관련 동아리 교육에 나선다. 자치법정 지도는 물론이고 실생활 관련 법 강연, 법 세미나, 법원 방문 같은 프로그램이 학교별로 매달 열리고 로스쿨 학생들이 멘토로 나선다.
이 프로그램을 직접 구상한 이기택 서울서부지법원장은 “지역 사회의 청소년들에게 법 개념을 쉽게 알려주고 로스쿨 학생들에게서 학습적, 정서적 도움도 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앞으로도 법 교육을 원하는 관내 학교를 위해 매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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