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추억 담기, 어렵지 않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2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와 함께한 한양도성길 ‘길드로잉’
붓-펜-스케치북만 있으면 OK… 사진과 달리 배치-구도 맘껏 조정
부분보다 전체에 집중하면 복잡한 풍광도 단순하게 다가와

17일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 올라 성북구 일대와 북한산 자락을 스케치한 이다 작가. 그는 “산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는 그림에서 뺐다. 보기 싫은 풍경은 넣지 않아도 돼 길드로잉이 좋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17일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 올라 성북구 일대와 북한산 자락을 스케치한 이다 작가. 그는 “산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는 그림에서 뺐다. 보기 싫은 풍경은 넣지 않아도 돼 길드로잉이 좋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왜 사진에 담긴 바다 빛은 그때 봤던 코발트블루가 아닐까?”

여행지를 다녀온 이들이 추억이 담긴 사진을 꺼내 보며 간혹 드는 생각. 사진과 여행지에서의 기억에 괴리가 있을 때가 있다. 이런 이들이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여행지의 풍광을 직접 그리는 ‘길드로잉’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끄적끄적 길드로잉’(웅진지식하우스)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재승출판) ‘드로잉 자전거 여행’(씨네북스) ‘이지 드로잉 노트’(진선아트북) 등 최근 관련 서적 출간도 활발하다.

이다 작가가 낙산공원에 올라 완성한 길드로잉. 이다 작가 제공
이다 작가가 낙산공원에 올라 완성한 길드로잉. 이다 작가 제공
이 중 ‘끄적끄적 길드로잉’은 그림의 대상 선정, 구도 잡기, 필기구 선택 등의 기법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이다(가명·33)는 2001년부터 출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그동안 그림일기책인 ‘이다의 허접질’(2003년), ‘무삭제판 이다플레이’(2008년), 손 글씨로 쓴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기인 ‘내 손으로 발리’(2008년) 등의 책을 냈다.

17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낙산공원까지 한양도성길을 따라 작가의 길드로잉을 동행 취재했다. 작가는 “도성길은 문화유산과 아기자기한 마을, 자연 경관이 어우러져 길드로잉의 최적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발길이 먼저 머문 곳은 창신동의 한 다세대주택 앞. 작가는 A4용지 크기의 스케치북을 꺼내 10여 분간 고동색 색연필로 건물의 윤곽을 그리고 채색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확장하지 않은 베란다에 빨래가 널린, 독특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이 나는 집이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평범한 집이 작가의 눈썰미와 손길이 어우러져 도화지 위에서 펄떡거리며 생동감을 얻었다.

작가는 길드로잉의 매력으로 붓과 펜, 스케치북만 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 사진을 찍으면 제지를 받을 수 있지만, 그림은 어디서든 환영을 받는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는 데 비해 길드로잉은 사소한 사물 배치와 구도를 맘껏 바꿀 수 있다.

이화마을도 작가의 스케치북에 담겼다. 낙후됐던 이 마을은 2006년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돼 예술가 60여 명과 주민이 함께 벽화와 설치 미술로 마을을 단장했다. 이후 ‘청담동 앨리스’ ‘옥탑방 왕세자’ ‘냄새를 보는 소녀’ 등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돼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마을의 중심인 이화동마을 박물관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화면을 채워 갔다. 얼핏 복잡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작가는 쓱쓱 그려갔다. 작가는 길드로잉의 요령으로 △부분보다 전체에 집중할 것 △실력을 키우려면 지우개로 자꾸 지우지 말고 끝까지 한 번에 그릴 것 △물감은 같은 톤 60%, 다른 톤 30%, 완전히 다른 색깔 10%를 쓰는 ‘6 대 3 대 1’의 법칙을 활용할 것 등을 소개했다.

작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출판사를 통해 수강생을 모집해 길드로잉 수업을 4차례 진행했다. 한 번에 15명 정도가 참여한 수업에는 20, 30대 여성이 주류를 이뤘지만 40, 50대 남성도 있었다. 기자처럼 스케치북만 보면 딸꾹질이 나는 ‘그림치(癡)’들에게 작가가 건넨 말.

“단원 김홍도 그림은 명암이 없어도 명작이라고 해요. 60억 명이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저마다 다른 작품을 남기는 게 그림의 매력이에요. 나를 위한, 나만의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붓을 드세요.”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일러스트레이터#이다#한양도성길#길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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