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생 현대자동차 ‘쏘나타’에 ‘국민차’라는 수식어를 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쏘나타는 오랫동안 ‘중산층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가족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처음 나왔을 ‘소나 타는 차’라는 경쟁사의 조롱 속에 판매량도 부진했지만 결국 올해 1분기까지 전 세계에서 738만여 대를 판매하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일렬로 세우면 경부고속도로를 왕복 40번 이상 오갈 수 있는 길이가 나온다. 수직으로 쌓으면 에베레스트 산을 1250개 정도 포개 놓은 것과 같은 높이다.
쏘나타는 1985년 11월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이듬해에 바로 바꿨다.
쏘나타는 처음부터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차’를 표방했다. 현대차는 최초의 자체 개발 중형차인 ‘스텔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스텔라 기본 차체에 1800cc와 2000cc 엔진을 얹어 소나타를 만들었다. 자동정속주행장치, 파워핸들, 파워브레이크, 자동조절 시트, 전동식 리모컨 백미러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첨단장치들을 적용했다.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인기배우 신성일 씨가 첫 번째로 계약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스텔라의 아성이 너무 컸던 탓일까. 확실한 디자인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1세대 쏘나타는 2만6000여 대 팔리는 데 그치며 2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교훈을 얻은 현대차는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6월 철저하게 수출 전략형 중형차로 2세대 쏘나타를 개발해 내놓는다.
올림픽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알린 그 여세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자는 전략이었다.
‘포니’를 디자인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차체를 더 둥글게 디자인했다. 당시로선 꽤 넓었던 실내 공간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세대 쏘나타는 1988년 11월 3277대가 미국행 배에 실리며 국산 중형차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쏘나타는 경제 발전과 해외여행 자유화로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며 승승장구한다.
1993년 탄생한 ‘쏘나타Ⅱ’는 파격적으로 발전한 디자인과 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ABS), 전자식 서스펜션(ECS) 등 첨단장치를 내세우며 33개월 동안 무려 60만 대가 팔려나간다. 1996년 ‘쏘나타Ⅲ’는 그해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최우수 자동차에 선정됐다. 같은 해 1세대 모델부터 국내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달성한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부도 위기에 처한 기아자동차가 30% 파격적인 할인을 한 ‘크레도스’에 잠시 1위 자리를 내준 것 외에는 2010년 6월 기아차 K5가 나올 때까지 중형세단 월간 판매량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한국이 국제무대에 위상을 떨치기 시작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쏘나타는 ‘기술독립’을 선언한다. 4세대 EF 쏘나타와 5세대 NF 쏘나타에 현대차가 독자기술로 개발한 엔진이 실린 것. 이름에 개발 프로젝트명을 그대로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1년 뉴 EF 쏘나타는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서 주인공과 암살자의 추격 장면에 비중 있게 등장했다. NF 쏘나타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 준공되며 ‘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생산돼 북미시장 공략에 앞장섰다.
쏘나타는 2009년 6세대 YF 쏘나타, 2014년 7세대 LF 쏘나타로 다시 태어났다. 이달 2일 나온 2016년형 쏘나타는 1.7 디젤과 1.6 터보 모델로 엔진 크기를 줄이며 스스로 만든 중형차의 공식을 새로 써나가고 있다. 플러그인(충전식)하이브리드 모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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