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공소시효 없애면 진호 형제 살아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03시 00분


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살아 있으면 지금 스물넷, 스물하나 어엿한 청년이 됐을 진호 형제(가명)다. 2002년 2월 20일 이후 나는 하루도 이 형제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다. 그날 오후 형제는 집에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외출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엄마와 죽기 몇 분 전까지 다정하게 통화했던, 떼도 잘 쓰지 않던 착한 형제였다. 경기지방경찰청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형사들이 모두 출동했다. 하지만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 독한 청산가리를 먹였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형제의 아버지는 당시 급성장하던 벤처 기업인이었다.

사실 경찰은 형제의 아버지가 결별을 통보했던 내연녀를 강하게 의심했다. 협박 편지를 보낸 정황을 찾아냈다. 하지만 살인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건 발생 1년 9개월이 지나고 공범의 자백을 받아냈다. 공범은 그 내연녀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시키는 대로 청산가리를 사다 줬고 범행 당일 그 집 앞에서 망도 봤다”고 털어놨다. 하도 초조해서 아파트 계단에서 줄담배를 피웠고 내연녀가 형제의 집으로 들어간 후 아이들 비명이 들렸다고도 했다. 경찰은 이 둘을 곧바로 구속했고 1심에서 검사는 내연녀에게 사형을, 공범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범행의 직접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법원은 둘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2년 2월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속이 상해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한소리 들었다.

“나는 10년이 지나도록 범인 못 잡아 답답해서 마시는 건데, 이 형도 한잔하는 거요? 근데 기자가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인 걸 몰랐소?”

핀잔은 들었지만 아직 진범을 잡아낼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2002년 2월 시점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공소시효 완료 시점만 째깍째깍 다가오는 게 두렵고 서글펐다.

이제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없어질 모양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내게 됐다며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연일 박수갈채를 쏟아 내는 중이다. 나쁘지는 않지만 우선순위가 뒤바뀐 일이다. 이번 개정안의 발단이 됐던 태완이 사건이나 2004년 알몸으로 훼손된 채 발견된 포천 여중생 피살, 진호 형제 사건은 시간이 모자라서 범인을 잡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장기 미제 강력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 인력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 배치된 50명이 전부다.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지면 이들이 범인을 잡아내야 할 어려운 사건은 더 늘어난다. 이에 경찰이 준비 중인 대책은 50명에서 72명으로 22명을 늘린다는 게 전부다. 지방경찰청마다 한두 명 증원될 뿐이다. 공소시효를 없앴지만 범인은 더 잡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 측에 ‘언젠간 범인이 잡힐 거야’라고 끝없이 희망 고문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진호 형제 사건 때 경찰은 집 내부만 열심히 조사했다. 공범이 ‘계단에서 줄담배를 피웠다’고 했지만 당시 경찰은 계단에 담배꽁초가 있었는지 아예 조사하지 않아 이 진술의 진위조차 가리지 못했다. 경북 상주에선 최근 농약 사이다를 마신 노인들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용의자 집을 압수수색해 농약병을 찾아냈지만 몇 병이 어디에 있었는지 면밀히 살피지 않는 바람에 그 이후 누군가 농약병을 가져다 놨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경찰의 허술한 현장 조사가 계속된다면 공소시효 없애 봐야 범인 잡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살아오진 못하겠지만 이래서야 진호 형제 한이 풀리겠나.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공소시효#진호 형제#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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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5-07-24 09:52:50

    이동영기자, 무슨 기사제목을 이따위로 쓰는 겁니까? 공소시효 없애도 죽은 자가 안 돌아 오는것 이 세상 사람 다 알아요. 또 경찰이 일 많은 것도 알아요. 이 범법자들 평생 죽을 때가지 발 못벋히고 살게 하는 것도 하나의 형벌 입니다

  • 2015-07-24 10:26:27

    그러나 공소시효 없애는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토껴봐야 별수없고 경찰도 미제 건수가 많아지면 국민의 질책을 받을거니 더 열심히 수사할수밖에 없지요.피해자도 앞으로 생길 사립탐정 동원해 수사할수있고, DNA 오래 보관된것 활용할수도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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