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A 교수는 최근 B 의원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B 의원의 대학 후배인 A 교수는 “대놓고 부탁을 하진 않았지만 왜 전화를 했는지는 뻔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B 의원의 지역구는 인구편차를 ‘2 대 1’로 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인구 하한선 미달 지역구로 분류된다.
비슷한 시기에 C 의원도 A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C 의원 지역구 역시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는 곳. 6월 말 인구 기준으로 헌재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 선거구는 60곳이나 된다. 인구 상한선을 넘겨 지역구를 쪼개야 하는 곳이 36곳, 하한선에 미달돼 지역구를 통폐합해야 하는 곳이 24곳이다.
외부인사 9명으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는 사실상 여야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 조정안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명백히 위반될 경우 한 차례 재조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국회가 직접 수정할 수는 없다.
다급해진 일부 의원은 선거구획정위 위원들뿐 아니라 국회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에게도 ‘읍소 전략’을 펴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정개특위 위원은 “(선거구 획정안을) 만지지도 못하는데 여기저기서 민원이 쇄도한다”며 “(민원에) 시달려서 죽을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선거구 획정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획정 원칙과 기준을 두고 여야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선거구 변경과 관련해 ‘기존 지역구’의 역사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폭적 조정보다 인구 편차에 맞춰 조정 대상을 최소화하자는 얘기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하나의 기초자치단체가 단독 선거구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 선거구를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지역구인 경남 통영-고성의 경우 통영은 인구 하한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통영은 별도 선거구로 독립시키고, 고성은 다른 지역구와 묶어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의 엇갈린 주장은 20대 총선 셈법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가급적 지금의 지역구 구도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야당은 총선 승리를 위해 기존 선거구의 판 자체를 흔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선거구 획정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벌써부터 선거구 확정의 법정 처리 시한인 11월 13일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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