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안심시킬 메르스 대책도 없이 달랑 ‘종식 선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9일 00시 00분


정부가 어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5월 20일 첫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69일 만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제35차 메르스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국민께서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는 것이 의료계와 정부의 판단”이라며 “이제 메르스로 인한 불안감을 모두 떨치고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마지막 환자가 완치된 날부터 28일(최대 잠복기 2배)이 지나야 종식 선언이 가능하다. 현재 유전자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가 1명 남아 있는데도 정부가 서둘러 메르스 종식을 밝힌 것은 성급한 감이 있다. 영국 BBC가 “한국이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면서 “그러나 WHO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메르스가 종식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것도 국제사회의 시선을 반영한다.

두 달 넘게 지속된 메르스 사태로 온 사회가 공포에 휘청거리면서 경제에 깊은 주름살이 생겼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식 기준보다 앞서 메르스 종식을 밝힌 황 총리의 충정은 이해한다고 해도, 국민을 안심시킬 만한 구체적 대책도 없이 “앞으로 내놓을 것이니 불안감을 떨치라”는 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겨냥해 한국이 메르스 안전지대라고 알리느라 정작 국민을 위한 대책에 소홀해선 정부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어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후속 조치 역시 가시적인 것은 국민안전처 범정부메르스대책본부 해산뿐, 나머지는 끝까지 잘하겠다는 다짐에 불과했다.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 등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것도 황 총리가 말한 내용과 비슷하다. 메르스 사태가 다 끝난 다음에 발표할 대책이면 굳이 지금 ‘사실상 종식’을 선언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민안전처 신설 등을 밝힌데 비하면 한가하고도 미흡한 대응이다.

정부는 초기 방역부터 수습 과정까지 안이하고 경직된 판단으로 크고 작은 실책을 이어갔다. 국가 위기관리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허술한 방역체계와 후진적인 의료문화의 민낯도 낱낱이 드러냈다. 국가 방역과 보건 분야의 인적 제도적 개선방안은 거의 다 나와 있다. 정부는 책임자 문책과 함께 이번 사태를 과학적 총체적으로 평가한 ‘메르스 백서’를 내놓아야 한다. 사후 조치마저 안이하고 부실하다면 ‘무능한 정부’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도 또다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메르스 대책#종식 선언#메르스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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