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지난달 발간한 저서 ‘한국전쟁 발발 기원과 관련한 새로운 주장’에서 6·25전쟁을 스탈린의 음모로 분석했다. 마오쩌둥의 공산당 정권 출범 이후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지 못하도록 한반도에서 전쟁을 유도하고 이를 틈타 소련은 유럽에서 사회주의 패권을 강화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말실수인가, 무능인가
스탈린의 책략으로 시작된 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딱 62년 되는 2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미국에서 “우리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다.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다”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야 할 만큼 한미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집권여당 대표이자 여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차기 대선주자의 한 사람이 굳이 중국과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교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김 대표가 “한미관계는 전면적 관계이고 한중은 분야별 일부 관계”라고 말한 것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돼온 중국과의 관계를 폄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 대표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있다는 중국의 한 한국 전문가는 “김 대표가 좀 말실수를 한 것 같다”면서도 “미국과의 정식 회담이 아니라 기자간담회에서 한 얘기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또 다른 지한파 교수는 “중국에 오면 중국에 좋게 얘기하고 미국에 가면 거기에 좋게 얘기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있었지 않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특성을 감안할 때 복잡한 심경이 엿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냉랭한 미중관계와 어느 때보다 좋은 미일관계를 의식해 한미동맹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 해도 저렇게 얘기하는 건 향후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3월 한양대 강연에서 러일전쟁을 언급하며 “독도를 일본 사람들이, 일본 놈들이 동해상에서 러시아 함대와 전쟁하면서 교두보로 삼고자 빼앗아 갔다”며 ‘일본 놈’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우리의 대일외교는 적잖은 후유증을 치러야 했다. 김 대표는 또 비슷한 무렵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며 한미 당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줄타기하다 추락할 수도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역사적 유물”이라며 한미동맹의 급속한 복원에 불편한 심사를 표출한 적이 있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 장면이다. 수학자 존 내시의 ‘균형 원리’를 적용할 때 우리가 한반도 주변 강국 사이에서 최상의 접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보다 몇 배 더 신중한 검토와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 국제관계다.
김 대표는 어제 뉴욕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한국이 세계 10위권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때까지는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서커스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커스에서 줄을 타는 곡예단원이 하나의 동작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균형을 상실하면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알고서 하는 얘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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