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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주제는 ‘國格’]<145>佛 관광지의 ‘투덜이’ 한국인
여름 관광 성수기인 요즘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는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다. 오전 9시 개관 후에 도착하면 1, 2시간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에펠탑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도 ‘여기서부터 2시간’이라는 팻말 앞에서 줄을 서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긴 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외국 관광객 중에는 한국인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1일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 궁전을 찾은 한국인 이모 씨(24·여)는 “오전 10시에 도착했는데 소지품 검사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 관광객은 시간이 돈인데, 이렇게 지체하면 어쩌냐”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은 지루한 줄 서기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줄 서기 싫어요’라는 해시태그가 붙어 있는 사진이 넘쳐나고, 블로그에는 ‘줄 서지 않는 비법’이 여행 고수의 ‘꿀팁(tip)’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줄 서기’는 평생 몸에 밴 습관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국 관광객의 푸념에 현지 프랑스인들은 “여기 삶이 원래 그렇다(C′est la vie, C′est comme ¤a)”며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다. 이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할 때 집에서 이어폰과 읽을 책, 심지어 간이의자까지 챙겨 나오기도 한다.
매년 9월 셋째 주말에 열리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는 프랑스의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 외교부 청사, 국회의사당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건물을 무료로 개방하는 날이다. 가장 인기 있는 엘리제궁 앞에서는 평균 7, 8시간 동안 줄을 선다. 줄을 서느라 식사를 거른 사람들을 위해 샌드위치 장사꾼들이 몰려들긴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프랑스에서 줄 서기는 관광지에서뿐만 아니라 우체국, 은행, 관공서, 영화관, 약국, 기차역, 세일 행사를 하는 쇼핑센터 등지에서도 관습처럼 굳어 있다. 두 명만 넘으면 한 줄로 줄을 선다. 새치기하는 얌체족이 있을 때는 준엄하게 꾸짖는 소리가 들린다. 유일한 예외는 어린아이를 태운 유모차다. 이것을 끌고 온 가족이 보이면 아무리 긴 줄이라도 앞자리로 가라고 손짓한다.
줄을 선 사람들의 ‘차례’에 대해선 반드시 존중해 준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앞사람이 빠뜨린 물건이 있으면 매장에서 다시 가져올 때까지 뒷사람이 꾹 참고 기다려 준다. 또한 일방통행 1차로 골목길에서 청소차량이 길가에 내놓은 쓰레기통을 비우느라 20∼30분씩 지체해도, 뒤에서 줄 선 차량들 중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가 없다.
이러한 생활 속 줄 서기엔 정치인이든 부자든 특권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프랑스 문화교류 단체인 ‘에코드라코레’의 이미아 대표는 “얼마 전 부인이 현직 투자청장이고 남편이 전직 경제장관인 프랑스 부부와 함께 극장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30∼40분 동안 줄을 섰다가 관람했다”며 “줄 서기에 불만을 표출하다간 ‘당신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눈총을 받는다”고 말했다.
유럽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은 요즘 유명 관광지에서 거의 예외 없이 긴 줄을 체험한다. 현지 관광 안내인들은 “줄 서기는 각 나라 기초질서의 수준을 보여 준다”며 “이것이 불편하다면 아예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허용되는 ‘박물관 패스’와 같은 입장권을 미리 구입하는 것도 낭패를 피하는 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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