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롯데그룹에 대해 ‘면세점 재허가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장기화되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해석된다. 경영권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위축된 국내 내수경기 활성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벌 개혁에 대한 여론이 고조될 경우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 개혁 등의 개혁 과제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1979년 문을 연 롯데면세점이 롯데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연 매출액이 지난해 기준 1조9800억 원으로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면세점 매출의 45%를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 4800억 원을 올린 월드타워점도 롯데그룹의 숙원 사업인 제2롯데월드로 옮긴 상태로 롯데로서는 뺏겨선 안 되는 곳이다.
또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롯데는 지난해 매출(4조7165억 원)의 83.7%(3조9494억 원)를 면세점 사업에서 거뒀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이 지분의 99% 이상을 보유하면서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호텔롯데 매출의 절반이 넘는 면세점 사업의 축소는 기업가치 하락을 넘어 한국롯데와 일본롯데의 ‘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 계열사의 힘이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당초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50.2%에 이를 정도로 입지가 탄탄하고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10월 말에 무난히 재허가를 받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가 롯데그룹 총수 일가(一家)의 경영권 분쟁이 ‘감점 요인’이라고 밝힌 만큼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관세청은 올 4월 발표한 면세점 심사 기준에 △운영주체에 대한 지역여론 등 평가 및 공헌도 △경영상태 등을 포함시킨 바 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관세청의 면세점 재허가 심사항목 가운데 최근의 사태가 반영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진행됐던 신규 면세점 허가 심사에서도 숫자로 나오는 실적보다 심사위원들의 주관이 반영된 ‘정성평가’가 당락을 좌우했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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