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수 브랜드10]언제나 곁에 있는 친구처럼 아픔 달래주고 기쁨 나누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광복70년]
“창조-혁신으로 ‘블루오션’ 개척… 최대 100년 넘게 한국인 사랑 받아”

《 광복 70주년을 맞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수많은 제품을 사용했다. 단 한 번 써 보고 버리는 제품도, 몇 년간 사용해 보는 제품도 있었다. 제품 하나를 수십 년, 길게는 100년을 넘게 쓰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공산품이 아니라 국가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식품부터 약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업이 배출한 장수 상품을 살펴봤다.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브랜드는 매년 하늘의 별처럼 많이 배출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표 등록을 한 제품만 10만 개가 넘는다. 이 중 10년, 20년 후에도 살아남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제품은 열 손가락을 채우기도 힘들 것이다. 수십 년을 굳건하게 버티는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도 크나큰 영광인 이유다. 동아일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의 대표 장수 브랜드 10개를 선정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게 한국인들의 일상에 녹아든 제품들이다.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겪은 장수 브랜드의 숨은 이야기를 알아봤다.》

○ 장수 브랜드는 새 시장 여는 ‘창조제품’

“한국인은 많은 식사를 너무 빨리 먹어 위장병이 많다.”(19세기 말 캐나다 선교의사인 올리버 에이비슨 연희전문학교 2대 교장의 기록)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국내 최초의 등록상표인 ‘부채표’의 활명수가 나온 1897년에도 한국인의 식사 속도는 빨랐다. 제대로 된 약도 없었던 터라 급체한 사람이 숨지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 부분을 파고든 것이 바로 동화약품의 활명수다. 엄청난 수요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약이 없었던 터라 활명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저작권이 없었던 1910년대부터 ‘이 약을 살 때 부채 상표에 주의하시오’라는 신문 광고까지 냈을 정도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활명수의 118년 장수에 대해 “수요가 많은 ‘블루오션’에 진입해 ‘생명을 살리는 물(활명수)’이라는 좋은 브랜드로 꾸준히 관리해 온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장수 브랜드 중에는 이처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선점한 경우가 많다. 항염증제인 안티푸라민 역시 마찬가지다. 안티푸라민은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1933년 개발했다. 이 약이 개발될 당시 국민 대부분은 농사일 등 고된 노동에 종사했지만 상처가 났을 때 바를 약조차 변변히 없었다. ‘아픔을 없애 준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효능 때문에 감기에 걸렸을 때 코에 바르는 국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장수 브랜드로 떠오른 상품도 있다. 샘표는 1946년 간장 영업을 시작했다. 누구나 간장을 집에서 담가 먹던 시절이다. 사 먹는 간장을 홍보하기 위해 샘표 직원들은 직접 간장병을 들고 나가 시장 상인이나 주부들에게 맛을 보여줬다. 그렇게 ‘간장은 집에서 만드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결과 샘표간장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간장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 누가 봐도 “그 제품”…정체성 지켰다

매년 디자인을 바꾸는 제품이 있다. 단기 실적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수 브랜드에는 맞지 않다. 장수 제품 중에는 기업이 스스로 세운 제품 정체성(브랜드 아이덴티티·BI)을 수십 년이 지나도 고수한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새우깡이다. 1971년 출시 당시부터 ‘새우깡’이라는 글자를 세로로 쓰고, 큼지막한 붉은 새우 그림을 포장지에 넣었다. 글자와 그림의 위치는 꾸준히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제품 디자인은 처음 제품을 선보인 이후 누구나 ‘새우깡’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간식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44년 동안 국내 스낵류 1위 제품이 됐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둘러앉아 함께 먹던 제품이라는 기억이 새우깡의 장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칠성사이다와 삼양라면 역시 제품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꾸준히 성장한 경우다. 초록색에 별이 선명하게 새겨진 병을 보면 제품의 이름을 보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칠성사이다’를 떠올린다. 칠성사이다는 지난해에도 국내 사이다 음료 시장의 약 80%(업체 추산)를 차지한 1등 제품이다. 삼양라면은 회사 이름을 한자로 새긴 ‘삼양(三養)’ 로고와 따뜻한 느낌의 주황색 포장지를 52년 동안 지켜 오고 있다.

제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브랜드도 있다. 1971년 발매된 야쿠르트다. 야쿠르트는 출시 이후 44년 동안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방문 판매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유산균 음료’라는 생소한 음료에 사람들이 쉽게 친숙해진 데도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공로가 컸다. 야쿠르트 역시 ‘윌’과 ‘쿠퍼스’ 등의 추가 브랜드를 개발했지만 본래 야쿠르트 제품만큼은 예전 그대로의 디자인을 고수한다.

○ 혁신 계속한 장수 브랜드

하지만 어떤 제품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영원히 소비자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장수 브랜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자동차의 중형 자동차 쏘나타다.

1985년 첫선을 보인 이후 30년 동안 지속된, 한국 자동차 중 최장수 브랜드다. 하지만 그간 7차례에 걸쳐 모든 것을 바꾸며 생존해 왔다.

쏘나타 1세대는 지금 보면 “쏘나타가 맞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각진 디자인을 가졌다. 형님뻘인 스텔라가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지만 7세대를 거치며 디자인과 성능, 엔진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쏘나타라는 브랜드는 1980년대 윤택해진 한국인의 상징이지만 산업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개선해 왔다”고 말했다.

초코파이 역시 혁신으로 해외 진출까지 성공한 과자가 됐다. 파란색 패키지로 1974년 처음 출시됐지만 2002년 해외 소비자 취향에 맞춘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변하는 소비자 입맛에 맞춰 시대별, 지역별로도 끊임없이 다양한 맛을 선보이며 세계인의 입맛을 잡았다.

1956년 출시된 국민 조미료인 미원은 1990년대 초 ‘글루탐산나트륨(MSG) 유해 논란’을 겪으며 매출 부진에 시달렸지만 대대적인 제품 개편과 디자인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서 장수 브랜드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박재명 jmpark@donga.com·백연상·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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