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주민 내쫓지 않는 개발”… 공공시설-일자리 도시재생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도심 주택이 늙어간다]‘재생’ 선택한 서울 장위13구역

지난달 말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낡은 주택을 허무는 공사(왼쪽 아래 노란색 가림막 안)가 한창이다. 뉴타운 해제 지역 중 유일하게 도시 재생 시범구역에 지정된 장위동에선 최근 다가구 다세대주택 건축이 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낡은 주택을 허무는 공사(왼쪽 아래 노란색 가림막 안)가 한창이다. 뉴타운 해제 지역 중 유일하게 도시 재생 시범구역에 지정된 장위동에선 최근 다가구 다세대주택 건축이 늘고 있다.
동네를 고치고 다듬어 공동체까지 되살리는 ‘도시재생’이 전면 철거한 후 새로운 동네를 조성하는 뉴타운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도시재생 시범구역 5곳을 지정했다. 각각 100억 원씩 4년간 투자한다. 서울 성북구 장위13구역은 뉴타운 해제 지역으로 유일하게 도시재생 시범구역에 포함됐다. 뉴타운 수습 방안으로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 장위13구역(장위동 232-17번지 일대)을 지난달 직접 찾아봤다.

○ 개발 기대에 10년 ‘허송세월’

장위13구역(31만8425m²)은 2005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10년 동안 집도, 도로도 그대로 방치됐다.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은 75.8%. 주민들은 철거될 집이라며 수리도 하지 않았다. 동네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 최근 5년간 인구는 10% 가까이 줄었다.

사실 장위13구역은 ‘뉴타운 광풍’이 없었다면 개발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왕복 2차로 도로가 가까운 아랫동네에는 1970년대 군 장성들이 살던 고급 주택이 늘어서 있다. 북서울꿈의숲에 인접한 윗동네로 올라가면 경사길에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뉴타운이 지정됐을 당시부터 “도로도 넓히고 낙후된 동네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과 “멀쩡한 집을 부수고 왜 아파트를 새로 짓느냐”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러나 서울시 조사 결과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를 대부분 새로 만들고 아파트 옹벽도 세워야 했다. 추가 분담금은 계속 늘어났고 “새 아파트보다 월세를 받는 편이 낫다”며 반대하는 주민이 과반수였다. 결국 지난해 11월 뉴타운에서 해제됐다. 주민 송모 씨는 “10년 동안 집값은 반 토막이 났고, 동네는 발전을 멈췄다”며 “10년 세월만 날려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 사업성 낮고 원주민 내쫓는 뉴타운

장위13구역 주민은 재개발이 시작된 근처 장위2구역과 장위5구역에 살다 싼 집을 찾아 밀려든 주민이 대다수다. 이처럼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매우 낮다. 서울시에 따르면 뉴타운 지구 재정착률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뉴타운 지정이 활발하던 2004∼2008년 서울시 땅값 상승률은 평균 7.6%였지만 뉴타운 지구는 48∼258% 올랐다. 주민들을 외곽으로 몰아낼 뿐 주거 안정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주택 재건축·재개발과 도로, 편의시설 확충까지 포함하는 뉴타운은 물리적인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반면 도시재생은 소규모 개발이 이뤄지는 데다 일자리 창출이나 공동체 활성화 같은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춘다. 성북구는 도시재생사업 과제로 △한부모 지원센터, 마을도서관 등으로 이뤄진 커뮤니티센터 설치 △빗물을 저류조에 저장하는 빗물공동체 △감나무 공동수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사업을 제안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 주택가의 한 골목길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폭이 좁아 차량 통행이나 주차가 불편하고 건물도 낡았지만 뉴타운 지정 이후 10년간 확장이나 보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성북구 장위동 주택가의 한 골목길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폭이 좁아 차량 통행이나 주차가 불편하고 건물도 낡았지만 뉴타운 지정 이후 10년간 확장이나 보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도시재생 ‘실험’ 성공할까

그러나 ‘단기간’에 ‘대규모’로 주거환경이 바뀌는 데 익숙한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마치 고립된 섬처럼 낙후된 동네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주민 이모 씨는 “‘우리 동네만 재개발이 안되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하는 이웃들이 많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짓는 곳도 늘고 있다. 도시재생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임대업자들이 더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주민 참여가 필수다. 공공이 예산을 투입하고 주민을 동원하는 사실상 관 주도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프라를 바꿔 새로운 동네를 만드는 것이 아닌 만큼 주민들이 스스로 공동체 복원에 나서야 한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도시재생 전문가를 영입했다. 공무원과 마을주민 사업시행자 등으로 구성된 도시재생운영위원회도 설치했다. 행정적인 체계는 갖춰졌지만 아직 주민들은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다. 도시재생을 재개발, 재건축의 다른 이름 정도로 아는 주민도 많았다.

이재우 목원대 교수는 “낡은 집을 주고 새 집을 얻는 과정에서 재산 증식의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는 도시재생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먼저 마을 리더를 길러내고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