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출입문 나서자마자 ‘쾅’… 부상자 부축해 나올때 또 ‘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03시 00분


[北, DMZ 지뢰 도발]
긴박했던 상황 재구성

4일 오전 7시 28분. 파주 지역 서부전선 육군 1사단 소속의 김모 하사(23)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가장 가까운 추진철책 출입문 앞에 섰다. 추진철책은 비무장지대(DMZ) 안의 GP와 연결된 철책으로 수색작업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김 하사가 출입문을 지나 북쪽 지역에서 전방 경계를 하는 동안 하모 하사(21)가 두 번째로 출입문을 넘어섰다. 그 순간, 2km 떨어진 군 관측소에서 들릴 정도로 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땅에 묻혀 있던 북한군의 목함지뢰를 밟은 것이다. 하 하사는 폭발력에 튕겨 나가 출입문 바로 앞에 있는 원형 철조망에 걸렸다. 철책이 흔들릴 정도로 큰 파괴력에 주변은 흙먼지로 뒤덮였다. 다른 곳을 감시하던 우리 군의 감시 장비는 바로 소리가 난 지점으로 방향을 돌렸다.

○ 돌발 상황에도 침착한 대응


수색분대장 정모 중사는 곧바로 달려갔다. 응급처치 장비로 하 하사의 상처를 지혈했고 “내가 경계할 테니 후송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후방에 있던 박모 원사, 박모 상병이 합세해 부상한 하 하사를 들고 나섰다. 하지만 김 하사가 첫 폭발 후 5분 뒤인 오전 7시 40분 출입문 남쪽에 있던 또 다른 지뢰를 밟으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났다.

박 원사와 박 상병이 튕겨져 나가 2∼3초 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질 만큼 폭발력이 컸다. 전방 경계를 하던 정 중사는 쓰러진 김 하사를 끌어서 남쪽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박 원사, 박 상병도 다시 일어나 하 하사를 안전지대로 끌어냈다. 그동안 남은 3명의 장병은 적이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해 모두 포복 자세로 통문 남쪽 둔덕으로 이동했다. 엎드려쏴 자세로 북쪽을 경계했다. 부대원 전부가 폭발로 놀랐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전투 행동을 유지했다.

소대장 문모 소위가 곧바로 인근 GP로 달려가 지원을 요청했다. GP 병력 6명이 들것을 들고 도착했다. 1차 폭발 14분 만인 오전 7시 49분 환자 후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작전 차량(GP∼GOP 통문)→구급차(GOP 통문∼후방 지휘소 헬기장)→의무 수송 헬기로 신속한 후송이 이어졌다.

○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3일 묻었을 가능성 높아”

9일 기자들이 방문한 북한 ‘지뢰 도발’의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에 대비해 10여 명의 병력이 취재진을 앞뒤로 경호했다. 현장은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안 육군 1사단 최전방 GP에서 약 750m 떨어진 곳. 현장에서 남쪽으로 10여 m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 뒤쪽엔 당시 수색병력들이 부상한 김 하사와 하 하사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사용한 피 묻은 거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바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이종화 1사단장(소장)은 “최근 개인별로 지급된 응급처치 장비가 부상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GP에서 사건 현장의 출입문까지 가는 길은 우리 군이 오래전에 지뢰 수색을 마친 곳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도발 이후 다시 지뢰 수색을 했다. 철 성분이 탐지된 곳에는 철로 만든 투구 모양의 표지(標識)를 놓았다. 사건이 발생한 출입문까지 3, 4개의 표지가 있었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지난달 23일에서 이달 3일 사이에 지뢰를 매설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나기 전 마지막 수색작전이 있었던 22일엔 남측 병력이 정상적으로 수색작전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열고 북쪽으로 나가 직선거리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울창한 나뭇가지가 하나 있었다. 이 나뭇가지를 들어보니 인위적으로 흙을 파낸 흔적이 나타났다. 합동조사단장을 맡은 안영호 전비태세검열단 부단장(준장)은 “동물의 흔적일 수도 있어 단언할 수 없지만 북한군이었다면 이곳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봐서 지뢰를 묻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군이 잠겨 있던 출입문 너머로 지뢰를 1개 묻을 수 있었던 것은 출입문 아래쪽과 추진철책 사이 틈을 막기 위해 설치한 X자 모양의 철사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파주=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조숭호 기자

박민규 인턴기자 고려대 교육학·사회학과
#철책#부상자#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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