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의사가운 벗고 새우잠 자며 8전9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내가 청년 리더]<7> 송금앱 ‘토스’ 만든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내놓은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본사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청년들에게 “행복을 미루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내놓은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본사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청년들에게 “행복을 미루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방 한구석 이층침대에는 이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침대 옆 이동식 행어에는 셔츠 몇 벌에 두툼한 겨울 점퍼까지 걸려 있었다. 책상 위 서류뭉치 사이로는 먹다 만 비타민, 피로해소제가 눈에 띄었다. 요즘 잘나가는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33)의 사무실 모습이다. “밤새워 일하는 날이 많아서요. 한창 바쁠 땐 여기서 먹고 자요.”

올해 3월 비바리퍼블리카가 내놓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토스’는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은행 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려면 공인인증서 인증에 보안카드 번호 입력 등 11단계 이상을 거쳐야 하지만 토스는 회원 가입 후 송금액과 받을 사람의 휴대전화번호,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송금이 된다. 현재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 9개 은행과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 평균 거래금액이 2억 원을 돌파하며 비슷한 송금 앱인 다음카카오의 뱅크월렛카카오를 앞질렀다. 최근에는 KTB네트워크와 알토스벤처스, IBK기업은행에서 총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아까워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잘 정도로 바쁘지만 이 대표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직장도 버렸지만 후회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있잖아요.”

○ 행복 찾아 내던진 가운

이 대표는 서울대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다 창업을 하겠다며 가운을 벗어던졌다. 화려한 스펙만큼 창업도 시험문제 풀 듯 쉽지 않았을까. 이 대표는 “포기할 게 많아 도전하기가 더 힘들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해오던 대로 살면 돈도 많이 벌고 쉽게 살 수 있었겠지만 다 버려야 했어요. 부모님과 지인들도 한사코 말렸죠.”

하지만 한번 마음을 굳히고 나니 다른 길이 안 보였다. 보장된 미래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 대표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KFC를 창업한 커넬 샌더스의 얘기를 꺼냈다. “수십 년 실패한 끝에 자기 이름을 내건 가게를 차린 게 65세가 되어서라고 해요. 저는 아직 젊잖아요.”

이 대표는 청년들에게 “행복을 미루지 말라”고 당부했다. 부모님과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데 급급하다 보니 취직을 해도 만족하며 사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취직과 생계에 치어 행복을 자꾸만 나중으로 미루는 것 같아요. 지금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찾아야 해요.”

○ 8번 실패했지만 도전 계속

치과의사가 아닌 창업가로서 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을 되풀이했다. 이번에 내놓은 ‘토스’도 실은 아홉 번째 아이템이다. 그는 “창업을 하려면 끈질기되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 이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아이템은 모바일 투표 시스템인 ‘다보트’였다. 하지만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해 이내 실패하고 말았다. 치과의사마저 포기하고 몰두한 사업을 접었을 때 그는 “자살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확고한 믿음이 있었는데, 이걸 버려야 한다니 자기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죠. 제가 또 한고집하거든요.”

그는 “창업을 하는 청년 대부분이 경험이 부족한 만큼 주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대표 역시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다니며 네트워크를 쌓았고 사업자금도 일부 지원받을 수 있었다.

8번 실패했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통장 잔액은 2만 원에,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어요. 여기저기 빚을 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거지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창업 도전 4년 만에 그는 마침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 대표를 버티게 한 건 남다른 내적 동기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등 성공한 창업가들은 수도승 같다”며 “어떤 실패와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끈기와 내면의 소리가 곧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다음 목표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사용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지구를 쓰고 있어요. 언젠가는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질 텐데,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