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참배
순국선열 추모비 앞 묵념 뒤 큰절
유관순 열사 갇혔던 옥사 등 돌아봐… “아베담화에 반드시 사죄 담겨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8) 전 일본 총리가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35년간의 일본 식민통치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건 2001년 10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 이후 14년 만이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약 50분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하토야마 전 총리는 방문 내내 “와비루(わびる)”를 반복했다. ‘사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날 형무소 곳곳을 돌며 11차례 고개를 조아렸다. 특히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큰절로 참배했다.
그는 유관순 열사(1902∼1920)가 투옥됐던 여(女)옥사 8호 감방을 비롯한 전시관, 중앙옥사 등 주요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약 5분간 유관순 열사 감방에 머물 때는 눈물을 살짝 훔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동행한 이혜훈 전 국회의원은 “유 열사 등 7명의 죄수가 순국 전까지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 등 내내 진지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방명록에 ‘만세운동에 힘을 다한 모든 영혼에게 편안함이 있길 바란다. 독립 평화 인권 우애를 위해서’라는 글귀를 남겼다. 이어 사형수 등이 머물던 중앙옥사 내부와 복도를 샅샅이 둘러본 뒤 옥사 뒤편 추모비로 향했다. 단상에 화환을 놓은 하토야마 전 총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약 10초간 묵념한 그는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굽혀 큰절까지 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 만세운동에 힘쓴 유관순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곳에) 수용돼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며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한다”고 말했다. 또 15일 발표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기념 담화에 대해 “한국을 식민통치하고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야 한다”며 “반드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8월 54년 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를 이끌어 낸 하토야마 전 총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13, 14일 열리는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전문가들은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의 행보가 한일관계의 ‘기념비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현진덕 강원대 일본학과 교수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1913∼1992)가 폴란드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처음 무릎 꿇은 것만큼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과 동북아 정세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하토야마 전 총리를 포함한 일본의 전직 총리 5명은 아베 총리를 향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제 추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대다수의 헌법 학자들이 안보법제가 위헌이라고 하는데 총리가 멋대로 헌법 해석을 바꿔 국회에 제출했다”며 “이는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횡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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