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국제앰네스티의 성매매 非범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함께 사라진 폼페이. 18세기에 다시 드러난 이 도시에 가면 빵집과 목욕탕 등 로마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수두룩하다. 성매매 전용 호텔도 그중 하나다.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 안에 들어서면 곳곳에 남녀상열지사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화장실에는 비싼 세금에 대해 불평하는 낙서가 남아 있어 당시 성매매 여성들이 국가에 세금 내면서 영업했음을 보여준다.

▷197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11일 대의원총회에서 “합의에 따른 성매매를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의결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앰네스티는 성을 사고파는 사람과 알선업체 등 관계자 모두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면 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가 음성화되고 국가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명분에서다.

▷각국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는 성적 학대이자 폭력”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권위 있는 인권단체에서 어떻게 성노동자를 착취하는 포주와 성매매업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냐는 것이다. 미국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은 할리우드 스타 메릴 스트립 등을 포함한 8500명이 동참한 공개서한에서 “성매매 조직을 보호하는 조치이자 앰네스티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스웨덴 외교부 장관은 “성매매 여성들이 자유롭게 직업을 택해 행복하게 일한다는 건 신화일 뿐”이라며 “포주와 성매수자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성매매와 관련해 한국은 성을 사고파는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금지주의’를 채택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합법화했고 영국 프랑스는 기업적 알선 행위만 처벌한다. 성구매자와 알선업자만 처벌하는 북유럽 모델도 있다. 나라마다 성매매를 바라보는 기준도 제각각이고, 성노동자의 현실도 다르다. 저명한 국제인권단체가 ‘성매매 비(非)범죄화’를 주장함으로써 한국에서도 성매매금지법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국제앰네스티#성매매#非범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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