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리나 졸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꼽힌다. 미모와 연기력으로 경지에 이른 이 여배우는 자해와 마약으로 점철된 험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캄보디아 난민의 삶을 목격하고 대오각성했다는 것이다.
졸리는 지난 15년 동안 30여 개 국가에서 유엔 난민 구호에 참여하며 거액을 기부했고, 구호활동 기간엔 자신의 체류비용 일체를 부담하며 구호직원들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했다. 테러로 인한 직원 사망을 목격하고는 구호직원 대피를 위해 스스로 조종사 면허를 땄고 비행기를 구매했다. 난민 아이 셋을 입양한 여섯 아이의 엄마다.
철의 여인으로 불릴 만한 이 여배우는 지난봄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며 또 다른 이슈를 만들었다. 가족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잃은 가족력에다 높은 발암 가능성 때문에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다며,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게 과학이 제공하는 몇 가지 선택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아직 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신체 부위를 제거하고 젊은 나이에 스스로 폐경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2년 전에도 높은 유방암 확률 때문에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과잉 의료행위인지, 질병 발생 전에 치료하는 과학의 성취인지, 암 발생 징후가 없는데 유전자 검사를 권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논쟁이 이어졌다. 칼럼에 BRCA1 유전자 변이 등의 설명이 있지만 같은 상황에서 암에 안 걸리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글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발암 확률에 대한 의심도 나왔다. 유방암과 난소암의 확률이라는 87%와 50% 숫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답은 빅데이터다. 측정된 생체 데이터를 다양한 가족력의 이전 환자 데이터와 비교하여 유사성을 재는 것이다. 빅데이터 열풍으로 다양한 활용 예가 회자되는 중에, 심각한 의료 문제에 사용되는 예다.
시간이 가며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는데 무질서하고 방대한 숫자들에서 어떻게 의미를 읽어낼까? 큐레이터는 무수한 미술 작품들을 일정한 주제나 방식으로 분류하여 하나의 흐름을 갖는 전시회를 만들어낸다. 그 덕분에 관람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품들의 연계된 의미를 읽어내고 음미할 수 있다. 방대한 빅데이터에서도 이런 의미를 읽어내는 큐레이터가 유의미한 데이터 전시회를 열어줄 수 있을까?
수학자들은 이런 큐레이터가 되는 법을 알아냈다.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학과장이던 구나 칼손 교수는 미국 연방정부의 1000만 달러 지원을 받아 졸리의 방식보다 훨씬 더 정확한 발암 확률 계산법을 개발했다. 그는 제자와 함께 2008년에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 아야스디(AYASDI)를 창업했다.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비슷한 생체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추가 암 검진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구별해낸다. 비슷해 보이는 신용카드 사용 패턴을 보고도 사기성 사용과 양호한 사용을 구별한다. 칼손 교수와 제자들은 위상수학이라고 하는 순수수학 이론을 가지고 이 마술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위상적 데이터 분석이라고 불린다. 위상은 모양을 뜻하니, 거대 데이터의 모양을 보고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당뇨병 데이터에도 적용됐다. 같은 유형2인데도 관련 없는 당뇨가 많았다. 대신 유형2 당뇨 중에 6개의 소유형이 각자 강한 내부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각 소그룹에 같은 치료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치료의 패러다임이 열렸다. 당뇨병 치료의 이 놀라운 진전이 전적으로 수학 때문이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투자자들은 이 충격적 변화의 의미를 즉시 이해했고, 이 스타트업 기업은 벌써 1억 달러 이상의 벤처 자금을 확보했다. 전통적인 응용수학에 속하지도 않는, 지적 유희쯤으로 보이던 순수수학이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접근을 산업수학이라고 부른다.
전혀 다른 DNA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기존 기업의 혁신이 다분히 응용과학적인 개선이라면, 이 수학 기업들은 통찰을 즉시 상품화한다. 기초과학에서 응용성을 이끌어내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니 ‘통찰의 상품화’라고 부를 만하다.
‘지식이 힘입니다(Knowledge is power).’ 졸리는 기고문을 이렇게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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