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와대가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 참석 여부에 대해 “열병식 관련 상세 사항은 현재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이미 불참을 정했던 청와대가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참석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행사 도중에 퇴장하는 것은 모양도 좋지 않고, 방중의 의미도 반감될 것이라는 얘기가 청와대 주변에서 나돈다.
국익을 고려한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열병식 참석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6·25 때 북한의 편에서 싸웠고 그 결과 통일이 무산된 역사에 비춰 볼 때 박 대통령이 중국군의 퍼레이드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국민 정서에 합당한지 의문이다. 전승절 행사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몽골 중앙아시아 4개국 지도자 등이 참석한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 중 체코에 이어 두 번째로 참석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옆에서 옛 사회주의권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경제는 물론 안보도 중국 쪽으로 기울었음을 세계에 각인시킨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왜 중국에 가야 하는지 청와대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방중을 통해 시 주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에 의견을 같이할 수 있겠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지도 알 수 없다.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북핵 문제에 관해 북이 핵을 포기하도록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칠 공산이 크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대북 압박을 원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의 무조건적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무엇을 요구할지도 궁금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 군대의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냉철하게 손익을 따져보고 실리를 챙길 수 있을 때 정당화할 수 있다. 이번에 시 주석의 체면을 세워주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보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한미동맹에 금이 갈 수도 있는 모험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그 후폭풍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이번 결정이 한국 외교사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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