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여름,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청와대의 부름을 받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적자투성이였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무렵 조 회장은 정부 당국자의 같은 부탁을 세 차례에 걸쳐 거절한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처사였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동아시아와 동남아 지역 11개 항공사 중 11위를 하는 항공사였다. 가지고 있던 항공기는 8대. 하지만 대부분 좌석 수 30∼40석 규모의 프로펠러기로, 좌석을 다 합해도 요즘 점보기 한 대에 해당하는 400석도 채 안 되는 규모였다.
더 큰 문제는 재정 상황. 누적 적자는 차치하고 금융 채무만 당시 27억여 원인 회사였다. 실제 정부는 항공공사를 두 차례 공매에 부쳤지만 당시 기업가치가 자본금의 절반 수준으로 평가돼 응찰자가 아무도 없었다. 조 회장의 측근들은 정부의 인수 요구에 대해 “한진이 베트남에서 힘들게 번 돈을 밑 빠진 독에 부으라는 것”이라며 거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회장도 이에 수긍하며 다시 거절할 생각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앞서 조 회장은 1961년 ‘한국항공’을 세웠다가 5·16 후 혁명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사업을 접어야 했던 쓰라린 경험도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주위 사람들을 물리친 뒤 조 회장과 독대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꼭 들어 달라며 말을 이었다. 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 별도의 전용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며 “월남에서 휴가를 나오는 우리 장병들이 외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장병들 사기도 문제려니와 귀중한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계속 묵묵부답으로 있자 박 대통령은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며 재차 요청했다. 대통령이 국가의 체면까지 거론하며 요청하자 조 회장은 결국 항공공사 인수를 약속한다. 조 회장은 이 자리에서 “수임 사항으로 알고 맡겠다”고 했다. 경제성보다는 국익을 위한 임무로 생각한 것이다.
회사로 돌아와 반발하는 중역들에게 조 회장은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설득했다. 또 당시 해운을 먼저 육성하려던 계획을 바꿔 항공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1969년 3월 6일,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이 열렸다.
극동지역의 협소한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약점으로 모두가 한국의 민항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조 회장은 과감하게 프로펠러기가 아닌 최신 제트기를 서둘러 도입하며 이름에서 ‘공사’를 뗀 대한항공의 체질을 바꿔 나갔다. 올해 창립 46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현재 보유 항공기 154대, 임직원 수 2만870여 명으로 수송능력 기준 전 세계 14위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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