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 공립학교들은 스쿨버스를 운행하면서 평상시엔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줄 서 있는 순서대로 학생들을 태운다. 그러다 갑자기 폭우나 폭설이 내려서 학생들을 일찍 귀가시켜야 하는 ‘비상 상황’에서는 반드시 여학생을 먼저 스쿨버스에 태운다. 고교 2학년생인 에머리 페이 양(16)은 “학교 보안요원 아저씨들이 스쿨버스 정류장에 나와서 ‘여학생들이 전부 탑승할 때까지 남학생들은 기다리라’고 지도한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 식당에선 거의 예외 없이 여성 손님의 주문을 먼저 받고, 음식 서빙도 여성부터 먼저 한다. 엘리베이터나 버스, 지하철을 탈 때에도 옆에 여성이 있으면 할머니이든 젊은 여성이든 상관없이 먼저 탈 것을 권한다. 외국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승용차에 타고 내릴 때는 문을 여닫아 주며 돕는 등 ‘레이디스 퍼스트’가 생활 속에 배어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단지 서양식 문화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 간 문화 교류의 미덕이 ‘좋은 점을 익혀 자기 공동체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문화다. ‘레이디스 퍼스트’ 정신에 숨어 있는 의미가 단순하게 ‘여성을 보호하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환경에서 불편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더 나아가면 여성이나 약자에 대한 혐오를 예방하는 인권 보호 장치로서도 의의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 및 비하가 유행이다. 된장녀 김치녀 등 일부 특정한 성향의 여성을 비하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맘충’(mom+벌레)이라고 비하하는 말까지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커피 마시러 오는 엄마들을 조롱하는 ‘커피충’이라는 말도 있다.
고려대 김수한 교수(사회학)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베풀면 자신도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레이디스 퍼스트’ 같은 문화의 정착이 가능하다”며 “개인의 노력과 국가적으로 신뢰 지수를 높이는 방안에 관심을 가져야 공동체의 품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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