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왕’ 이승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3시 00분


불혹에 타율 0.350-24홈런-OPS 0.995… 투수 유형 맞춘 타격에 경험 더해져

‘국민 타자’는 늙어가는 방식도 남다르다.

프로야구 삼성 이승엽(39)이 1일 NC와의 경기에서 2점 홈런을 쳐내며 19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다. 타율은 0.348. 1997년 기록한 개인 최고 타율(0.329)을 넘어서는 숫자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격 자세를 바꿨다. 방망이를 90도 가까이 세우던 것에서 이제는 지면과 거의 수평을 이루도록 방망이를 돌린다. 홈런 욕심을 버리고 타율을 올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벌써 홈런도 25개를 때렸다. OPS(출루율+장타력)도 0.995로 특급 타자의 상징인 1.0에 육박한다.

한국 나이로 40줄에 접어든 선수가 이렇게 맹활약하는 건 메이저리그에서도 흔치 않다.

보스턴의 데이비드 오티스(40)나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40)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홈런 타자다. 오티스는 2006년 54개, 로드리게스도 2002년 57개의 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이들의 최근 성적은 예년만 못하다. 오티스의 OPS는 2012년 1.026으로 반짝 뛴 뒤 2년 연속 하락하다 올 시즌 소폭 상승해 0.881을 기록했다.

로드리게스도 2007년 이후 줄곧 하락세를 그리다 2013년엔 홈런 7개에 그치기도 했다. 올 시즌 OPS 역시 0.851로 통산 기록에 못 미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만 35세가 넘은 선수 중에서는 아이카와 료지(39·요미우리)가 홈런 4개에 OPS 0.889를 기록하고 있는 게 최고다.

이승엽이라고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이승엽은 2013년 OPS가 0.693까지 떨어졌다. 나이가 들면 힘이 떨어져 배트 스피드가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일. 이승엽은 세월에 맞춰 사는 법을 터득했다. 김한수 삼성 타격코치는 “이승엽은 늘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다. 투수의 유형에 따라 다리를 드는 타이밍과 스탠스를 조절하면서 높은 타율을 유지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겨 담장도 쉽게 넘긴다”고 평가했다.

이승엽은 세월이 주는 경험이라는 선물도 받았다. 이승엽은 볼카운트 노볼 2스트라이크로 몰렸을 때 타율이 0.471이나 된다. 투수의 결정구를 제대로 예측한 결과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면 무너지는 젊은 선수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이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마티스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암에 걸려 13년 동안 거의 침대에 묶여 지냈다. 그는 붓을 포기하는 대신 색종이 오리기에 열중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파란 나부’ 같은 대표작을 만든 게 그때였다. 마티스는 병에 걸린 친구들에게 이 색종이 작품을 선물했다. 자기 작품에 치유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로서 ‘칠순’이 지난 이승엽의 ‘진화’ 역시 야구팬들에게 치유가 되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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