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성루 위에 서서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혈맹 국가’ 북한의 자리였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옆자리를 한국에 내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을 대표해 전승절을 찾은 그의 자리는 성루의 끝자리였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대신 참석한 최룡해는 다른 국가 정상들보다는 위상이 떨어진다. 북한대표단 단장이었지만 김정은의 특사 자격은 아니었다. 이날 최룡해가 연출한 장면은 얼어붙은 북-중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면이라는 해석이 많다. 1954년 6차 열병식에서 김일성 당시 수상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바로 오른쪽에 서서 함께 웃으며 혈맹임을 과시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최룡해의 부친인 최현 전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유명한 빨치산 지휘관이다. 최룡해 생모도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1세대 빨치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항일운동을 함께 했던 집안의 적자로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외교적 치욕인 셈이다.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과 같은 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최룡해는 이날 전승절 행사 참석 직전 의례적인 악수를 나눴을 뿐 시 주석과 별도의 면담 없이 열병식이 끝난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2일 만찬과 3일 오찬에서 최룡해와 별도로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방중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회복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평화와 질서를 깨는 행동을 북한이 하지 않는 한 중국은 북-중 관계를 일정 수준 유지하고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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