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의거-순국소식 상세히 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中뤼순감옥 전시실에도… 신문기사 20여 건 중 대부분 동아일보
안중근-이회영 유품등과 함께 전시

“사방이 온통 동아일보 기사뿐이군요.”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뤼순(旅順) 감옥. 최근 이곳을 찾은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감옥 안에 별도로 마련된 ‘뤼순감옥의 국제 전사들(國際戰士在旅順)’ 특별전시실을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특별전시실에는 이곳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와 우당 이회영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의 흉상과 유품, 관련 신문기사가 대거 전시돼 있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 최흥식 유상근 의사도 전시 대상에 포함돼 있다. 20여 건의 한국 신문기사가 전시돼 있었는데 대부분이 동아일보 기사다.

이 가운데 우당의 순국 소식을 알린 1932년 11월 22일 자 동아일보(사진) 보도가 눈길을 끈다. ‘대련경찰서 취조 중 이회영 씨 영면’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우당이 30년 동안 민족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로 다롄에서 고문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우당은 허리가 부러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1932년 11월 17일 6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우당은 그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를 보고 더욱 치열한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군 점령지인 만주행을 강행했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

동아일보는 이 기사 이후로도 우당의 시신이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4건의 기사를 연속 보도했다. 특히 영결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1월 29일 자 기사는 “조선의 세도문벌에서 태어난 우당이 조선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유해가 돼 귀국한 데 대해 친척들은 더 슬퍼하고 (중략) 유해를 맞는 이들의 창자를 끊는 곡성이 엄숙한 영결식장에 낭자했을 뿐”이라고 적었다.

기사에서 우당을 세도문벌이라고 언급한 것은 조선시대 일곱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 후손이기 때문. 우당은 해외 독립투쟁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40만 원(현 가치로 600억 원)의 막대한 가산을 정리한 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떠났다.

뤼순 감옥 특별전시실은 다롄 시 근대사연구소와 다롄대 한국학연구원, 한국광복회 등이 후원해 세워졌다. 뤼순 감옥은 1902년 러시아가 처음 지은 것을 1905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접수해 수많은 독립투사를 감금하고 고문한 곳이다.

다롄=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애국지사#동아일보#뤼순감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