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항적 사라진뒤 1시간넘게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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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낚싯배 전복사고]

돌고래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어선위치발생장치(V-PASS)의 신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해경은 잘못된 승선자 명부를 보며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뒤집힌 배 위에서 버티던 승객들이 하나둘 물속으로 사라지는데도 재빨리 구조하지 못한 이유는 해경의 미숙한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도에 결박돼 있는 돌고래호.
청도에 결박돼 있는 돌고래호.
돌고래1호 선장 정모 씨(41)가 제주 상추자도 추자항에 있는 해경출장소에 들어선 때는 5일 오후 8시 10분. 기상 악화로 회항한 내용을 신고하고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후 정 씨는 몇 차례 돌고래호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8시 25분에 다시 상추자도 해경출장소를 찾았다. 그는 돌고래호의 V-PASS 확인을 요청했다. 확인 결과 돌고래호의 운항 궤적은 오후 7시 39분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은 곧바로 하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안전센터로 돌고래호가 실제 출항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추자도 안전센터는 돌고래호의 승선자 명부를 찾아 기재된 승객들의 휴대전화로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승선한 21명 모두 바다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을 때라 전화가 연결될 리 없었다.

그러던 중 명부에 적혀 있던 승객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전남 해남에 거주하는 박모 씨(43)였다. “가고 있지요?”라는 해경의 질문에 박 씨는 얼떨결에 “네”라고 답했다. 하추자도 안전센터는 박 씨와의 통화를 근거로 상추자도 출장소에 “돌고래호는 이상 없음”이라고 통보했다. 이 내용은 돌고래1호 선장 정 씨에게도 바로 전달됐다.

하지만 그 시각 박 씨는 해남의 자택에 있었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박 씨가 해경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한 나머지 질문의 의미를 잠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해경은 박 씨가 돌고래호에 타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후 그는 “(선장과 연락이 닿지 않으니) 선장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전해 달라)”는 해경의 말에 직감적으로 ‘선장’이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 씨(46)라고 판단했다. 바로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박 씨는 하추자도 안전센터로 연락해 “돌고래호에 승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돌고래호사고수습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작성된 돌고래호의 승선자 명부에 적혀 있지만 실제로 탑승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5명이었다. 반면 4명은 명부에는 없지만 돌고래호에 올랐다. 해경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즉각 수색에 나서지 않고 다시 다른 승객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때는 돌고래호의 V-PASS 신호가 사라진 지 1시간 6분이 지난 뒤였다. 이미 배는 전복돼 추자도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돌고래1호 선장 정 씨도 오후 8시 50분경 상추자도 출장소를 다시 찾아 박 씨가 승선하지 않은 사실을 알렸다. 그제야 상추자도 출장소는 민간자율구조선 수배를 요청했다. 제주해경 상황센터로 상황을 보고한 때는 이로부터 13분 뒤인 9시 3분이었다.

박 씨는 7일 해경의 조사를 받은 뒤 본보와의 통화에서 “4일 오후 김 선장에게서 ‘추자도로 낚시하러 가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돌고래호 승선자 명부에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왜 내 이름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해경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돌고래1호 선장 정 씨가 처음 상추자도 출장소를 방문해 돌고래호의 연락 두절 사실을 알렸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경은 7일 브리핑에서 “정 씨가 처음 방문했을 때 돌고래호에 대해 별도의 신고 또는 수배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추자도=유원모 onemore@donga.com / 해남=이형주 / 박창규 기자
#추자도#해경#돌고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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