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 선수 중 최초로 창던지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줄리어스 예고 선수의 사연 때문이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주로 달리기 종목에 집중하기 때문에 예고 선수는 창던지기를 가르쳐 줄 코치는커녕 창을 던질 공간조차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가 10년 넘게 훈련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받은 경험이라고는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두 달간 유럽에서 연수를 한 것이 전부였다.
케냐의 빈곤한 가정 출신인 ‘맨주먹의 청년’을 금메달리스트로 만든 것은 놀랍게도 유튜브였다. 그는 PC방에서 전설적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경기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자세와 기술을 독학했다. 동네 공터에서 나무 막대기를 던지며 시작한 그의 여정은 세계 1위로 이어졌다.
인터넷과 동영상이 없던 시절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강인한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이루기 힘든 일이다. 정보기술(IT)의 발전이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안겨준 대표적 사례다.
며칠 뒤 다른 뉴스를 보다가 또 깜짝 놀랐다. 중학생이 대낮에 학교에서 부탄가스를 터뜨렸다는 소식에 한 번 놀라고, 유튜브를 통해 범행 수법을 익혔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이 학생은 범행 과정과 폭발 직후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을 직접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까지 했다. 유튜브를 범행의 시작이자 끝으로 활용한 셈이다. IT의 발전이 인류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사례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가지 사례를 보며 한창 진행 중인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떠올렸다. 각 나라가 교육과정을 손질하는 근본적 이유는 학생들에게 시대 흐름에 맞는 내용과 가치를 가르치려는 데 있다.
교육부가 내세운 2015 교육과정 개정의 목표는 ‘지식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학생이 인문사회, 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키울 수 있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교육과정 개정의 현장은 교과 이기주의로 얼룩지고, 미시적인 문제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면서도 융합적 사고력을 키워 주기 위해 신설하겠다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기존 과목들이 각자 얼마만큼의 분량을 차지하느냐의 ‘지분 다툼’으로 변질됐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이미 지식정보 사회의 한복판에 서 있는데, 시대에 뒤처지는 어른들이 뒷북을 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활용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찾고, 동영상을 보면서 실전 기술을 체득하며, 그 결과물을 온라인 세상에서 공유하는 데 능숙하다. 그런데 어른들은 여전히 초중고교에서 소프트웨어(SW) 교육을 어떤 과목으로 편성할 것인가, SW 과목이 생기면 기존의 어떤 과목이 사라질 것인가, SW를 일반선택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심화선택으로 할 것인가 하는 식의 이야기에 매몰돼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유튜브란 무엇인가’ 혹은 ‘유튜브를 보는 방법’ 같은 것이 아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튜브를 활용해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똑같은 도구로 금메달리스트도, 범죄자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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