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명품族이 낳은 ‘등골 등교패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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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75>과시소비 부모부터 돌아보자

경기도 중학교 교사인 윤희주(가명·31·여) 씨는 지난겨울,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A 군이 입고 온 점퍼를 보고 놀랐다. A 군이 입은 점퍼는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으로 70만 원이 넘는 제품이었는데, 그의 가정은 차상위계층(연간 총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 이하인 계층)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 씨는 혹시 A 군이 점퍼를 훔치거나 다른 학생 것을 뺏은 건 아닌지 속으로 걱정했다.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A 군의 어머니가 사준 것이었다. A 군 어머니는 “아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생활비 아껴서 사줬다”고 말했다. A 군이 입은 점퍼는 또래 학생들 열 명 중 서너 명은 입고 다닌다. 윤 씨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청소년들은 또래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비싸더라도 입고 싶어 한다. 부모들은 자식 기죽이기 싫어서 결국 사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겨울이 되면 교복 위에 비슷하게 생긴 같은 브랜드의 점퍼를 입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워낙 많은 중고교생들이 입다 보니 ‘제2의 교복’으로 여겨진다. 요즘에는 가을에도 특정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후드 티를 교복처럼 입는 학생들이 많다. 시기별로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달라지지만 값비싼 제품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겨울 점퍼의 경우 60만∼100만 원인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은 중고가에 속한다. 2, 3년 전부터 인기인 수입산 패딩 점퍼는 100만∼150만 원 정도다. 이 점퍼가 유행인 지역도 적지 않다. 한때 나이키 같은 신발이 그랬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권상희(가명·43·여) 씨는 “자녀에게 ‘비싼 옷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권 씨는 “중고교생들이 비싼 옷이나 가방 때문에 나쁜 짓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차라리 하나 사주고 말지’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엄마들은 “자식이 ‘엄마, 나만 이거 없어’라는 말을 하면 상황 종료”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청소년들이 무조건 고가 의류를 선호하는 것을 무턱대고 비난하기도 힘들다는 토로도 나온다. 어른들로부터 보고 배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부모의 말을 통해, 드라마를 통해, 언론 보도를 통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중1과 초4 자녀를 키우는 류민혁(가명·42) 씨는 “입버릇처럼 자녀들에게 ‘너는 이 다음에 어디 정도에는 살아야 된다. 그래야 인정받는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류 씨는 “나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물질만능주의와 허례허식을 부추긴 건 아닌지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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