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개선비 36가지로 제한… “낡은 책걸상 못바꿀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2015 국정감사]
‘교육부 정한 사업만 집행’ 입법예고

경기지역 A고교의 책상 다리는 상당수가 심하게 삐걱거린다. 서랍이 떨어져 나간 책상도 많아 수납할 공간도 없다. 학생들은 “책상이 작은 데다 기울어져 있는 게 많아 앉아 있기 불편하다”며 “책상 표면에 홈이 심하게 파여 시험지에 글씨를 쓰다가 종이가 찢어지는 일도 있다”고 호소했다. 이 학교 시설 담당자는 “책걸상을 바꾼 지 10년이 넘다 보니 높낮이 조절이 안 되는 구형인 데다 훼손도 심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삐져나온 나사에 다리를 긁히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 예산이 부족해 책걸상 교체는 엄두를 못 낸다”고 털어놓았다.

전국 초중고교 교실의 열악한 현실이다. 학생들이 하루를 보내는 교실의 낡은 책걸상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중고교의 책걸상 1626만 세트 중 42.5%에 이르는 685만 세트가 사용한 지 8년이 넘어 교체 대상으로 분류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교체하기에는 학교의 재정이 절대 부족한 게 현실이다. 특히 이들 학교를 총괄하는 교육부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6년 교육환경개선비 배분 방식(안)’ 자료를 21일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해 확인한 사실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내년 교육환경개선비 사용 대상에 ‘책걸상 교체’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환경개선비는 책걸상 교체, 바닥 및 창문 교체, 화장실 개선 등 낡고 망가진 학교 시설을 보수하거나 개선하는 비용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시도 교육청이 학교 수요 조사 등을 거쳐 자율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해 왔던 교육환경개선비를 내년부터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배분하기로 했다. 또 정해진 사업에 대해서만 집행하도록 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교육환경개선비를 지출할 수 있는 사업을 36가지로 한정해 제시한 데 있다.

교육부는 내년 교육환경개선비의 배분 기준을 10%는 정책사업비(방송시설 개선 8%+교실 세면대 설치 2%)에, 90%는 노후 시설 개선비로 사용하도록 했다. 노후 시설 개선비로 사용할 수 있는 36가지 사업으로 안전(교사동 개축, 구조 보강, 옹벽 보수, 옥내 소화전 등) 에너지(LED 조명, 이중창, 외벽 보수 등) 내외부 시설(바닥, 출입문, 내외부 도장, 운동장, 담장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작 낡은 책걸상 교체 항목은 없었다.

유 의원은 “교육환경개선비 배분안에 따르면 학생들은 낡은 교실에서 부서진 책걸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최신식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공사가 진행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부가 제시한 배분 방안을 다시 조정하고 LED 조명, 교사동 개축 같은 대규모 시설 사업은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환경개선비는 학교 건물의 안전 문제 해결이나 노후 보수에 사용되는 항목이라 책걸상 같은 비품 교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책걸상 교체 비용은 시도 교육청이 여건에 따라 다른 교부금 항목이나 학교운영비 등을 통해 집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길진균 leon@donga.com·김희균 기자
#교육환경개선비#제한#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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