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이모 씨(45)는 하루하루 대출이자 부담에 허덕거렸다. 어려워진 가게 때문에 대부업체에서 빌린 1000만 원이 화근이었다. 연 34.9%의 금리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루빨리 빚을 갚고 싶었지만 장사는 예전만 못했다. 대출을 갈아타기도 쉽지 않았다. 신용등급이 8등급이라서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꿨다. 서민들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한다는 햇살론을 이용해 보려고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 몇 곳을 찾았지만 햇살론의 문턱 역시 낮지 않았다. 이 씨는 몇 번 ‘딱지’를 맞은 끝에 겨우 인근 신협에서 연 7.25% 금리의 햇살론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이 씨는 “서민상품이라고 들었는데 대출이 번번이 거절돼 힘들었다”고 말했다.
햇살론과 미소금융 등 서민들을 위해 출시된 정책금융상품이 정작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자금난을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금융위원회가 김영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현재 햇살론 지원실적 14만7583건 중 최저 신용층인 9등급(193건)과 10등급(2건)의 이용비중은 0.13%(대출건수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소금융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소금융 지원실적 1만5232건 중 9등급(156건)과 10등급(31건)의 이용비중은 1.2%였다. ○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 9·10등급은 외면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도입된 햇살론과 미소금융은 금융당국이 내세우는 대표 서민금융상품들이다. 미소금융은 차상위 계층이나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인 영세사업자에게 대출금을 지원하고, 햇살론은 연 3000만 원 이하 또는 연소득 4000만 원·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서민들에게 생계자금을 빌려준다. 특히 정부 및 상호금융권이 공동으로 마련한 2조 원의 재원으로 운영되는 보증부 대출상품인 햇살론은 이용실적이 2013년 21만9590건(1조9728억 원), 2014년 21만330건(1조9280억 원)에 이르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대출의 내용을 뜯어보면 정책금융상품의 이용이 가장 절실한 신용등급 9, 10등급에게는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정으로 서민들의 ‘햇살’이 되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량한 중간 등급(4∼7등급)에게 대출의 85%가 집중되고 있었으며 은행에서도 충분히 대출이 가능한 1∼3등급 대출비중도 4.7%나 됐다. 취급 초기에는 9, 10등급에 대한 대출도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도입 첫해인 2010년만 해도 9, 10등급 대출비중이 4.0%였다. 하지만 이후 햇살론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며 9, 10등급 이용자의 비중이 0%대로 떨어졌다. 이는 정부의 보증비율이 2014년 95%에서 90%로 낮아지면서 금융회사들이 연체율 관리를 강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햇살론의 대위변제율(금융회사가 떼인 대출에 대해 정부가 대신 갚아준 비율)이 2013년 6월 말 기준 9.5%에 이르는 등 부실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2012년 7월 95%로 올렸던 보증비율을 90%로 낮췄다. 부실이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들이 져야 할 책임이 커진 것이다. 공격적으로 햇살론을 대출하던 저축은행 및 상호금융권도 대출심사를 강화했다.
○ 전문가들 “신용등급만 가지고 걸러내서는 안 돼”
전문가들은 금융회사들이 신용등급만을 갖고 손쉽게 대출신청자를 걸러내면서 저신용자들을 지원한다는 햇살론의 도입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환 의원은 “햇살론은 저신용·저소득 가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보증부 대출인데, 실제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공급이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의원은 “금융회사들이 신용등급만을 고려해 손쉽게 대출자들을 걸러낼 것이 아니라 상환의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대출심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민대출 운영 방식을 일부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고신용등급자에 대한 정부의 보증비율을 낮춰 서민금융회사들이 대출심사 역량을 강화하고 연체관리 능력을 키우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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