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에펠탑’을 지켜보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로, 프랑스는 18일 밤(현지 시간) 파리의 에펠탑을 빨강 파랑의 조명으로 물들였다. 한국 스타일로 화장(메이크업)한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났다.
에펠탑만이 아니었다. 지난주 프랑스로 출장을 갔던 나는 파리 시내에서도 반짝이는 ‘서울’을 목격했다. 오페라 지역에는 ‘에르보리앙(Erborian)―파리·서울’이라는 빨간색 간판의 화장품 매장이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멋쟁이 파리지엔들이 인삼의 사포닌 성분이 든 BB크림과 동백기름 마스크 팩을 고르고 있었다. 한 여성은 내게 “어떤 제품을 바르면 한국 여성처럼 빛나는 피부가 되느냐”고 물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에르보리앙이라는 이름은 ‘아시아의 허브’를 뜻하는 프랑스어(Herbe d’Orient)에서 따온 것으로, 로레알 연구원 출신 한국인 여성과 프랑스인 여성 마케터가 한방 화장품의 세계화를 목표로 2007년에 탄생시킨 브랜드다. 프랑스 유명 화장품 회사 ‘록시땅’은 이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고 2012년 회사를 인수해 제품 리노베이션을 거쳐 올해 5월 이 단독 매장을 열었다. 인삼 유자 대나무 등의 피부 개선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 제품들은 세계적 화장품 전문매장 ‘세포라’와 ‘프렝탕’ 백화점에서도 팔리고 있다.
그런데 에르보리앙 제품 가운데 인삼 화장품은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기업인 우리나라의 코스맥스가 만들고 있다. 설계와 마케팅은 본사가 책임지고, 생산과 제품 관리는 협력사가 나눠 맡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의 코스맥스 사업장을 취재했을 때가 생각난다. 반도체 공장을 방불케 하는 청결한 작업 환경, 제조한 화장품 상태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품질관리, 고객 회사의 요구를 꼼꼼하게 반영하는 고객관리…. 이 회사는 올해 2월부터 프랑스 ‘랑콤’의 쿠션형 파운데이션도 생산하고 있다. K뷰티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잘나가는 K뷰티를 따라 K패션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17일 아웃도어의 성지인 프랑스 샤모니에서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행사를 열었다. 방문해보니 각국 산악인의 과거 아지트였던 펍(pub)을 리모델링한 네파 매장은 단연 돋보였다. 이 매장의 프랑스인 직원은 “고객들이 고기능성 등산바지를 입어보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예측불허 기상과 맞서야 하는 레저 스포츠 영역에서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을 결합한 K패션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6일 “한국의 창조성은 전통과 디지털 초(超)현대성이 혼합돼 폭발하고 있다. 그것이 한류”라고 보도했다.
K뷰티와 K패션, 통칭 K스타일의 반짝이는 선전(善戰)을 보는 느낌이 좋았다. 돌아오던 날 들른 한 서점의 잡지 코너에서는 프랑스 주간지들이 민영 텔레비전 TF1에서 24년간의 주말 뉴스 앵커를 마감한 클레르 샤잘(59)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소식도 흥미로웠지만 프랑스 시청자의 오랜 관심을 받아온 그녀의 세련된 스타일이 한눈에 띄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연예인이나 전문모델 말고 K스타일을 알릴 만한 한국 여성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K스타일이 계속 세계인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궁극의 답은 사람 아닐까.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하는 한국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자연스러운 멋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이 흠뻑 빠져들, 외모와 내면이 모두 근사한 한국 남자와 여자….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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