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석]“꽃다운 우리, 그리움 품고 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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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가족·엄마의 명태순대·할머니 팥죽…
채널A ‘잘살아보세’ 출연 탈북미녀 4인방의 추석 이야기

장소 및 의상 협찬=박술녀 한복 / 채널A ‘잘살아보세’에 출연 중인 탈북 미녀 4인방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추석인사를 전했다. 이들은 “남한에 와서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잘살아보세’를 통해 든든한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서윤, 김아라, 한송이, 신은하.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장소 및 의상 협찬=박술녀 한복 / 채널A ‘잘살아보세’에 출연 중인 탈북 미녀 4인방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추석인사를 전했다. 이들은 “남한에 와서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잘살아보세’를 통해 든든한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서윤, 김아라, 한송이, 신은하.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추석이 되면 상 하나에 가족이 빙 둘러앉아 돼지고기 넣은 국을 끓여먹었죠. 국물에 비해 고기가 어찌나 적었던지 우리끼리는 ‘돼지가 장화 신고 건너간 물’이라고 불렀어요.”(신은하·28·함경북도 무산 출신)

“그렇게라도 기름을 섭취해야지요. 얼마나 끓였으면 뼈가 물렁물렁해져서…. 그런데 맛은 엄청 좋아요.”(김아라·24·함경북도 회령 출신)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잘살아보세’에 출연 중인 탈북 미녀 4인방이 추석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네 명은 앉자마자 북한에서 추석 때 먹었던 음식 얘기부터 꺼냈다. 막내 한송이(21·양강도 혜산 출신)는 “북한에서는 추석 전날이면 인사말로 ‘뭐 해 먹나’라고 묻는데 남한에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서윤(28·함경북도 회령 출신)은 제사상에 항상 올리던 이면수찜 얘기를 하며 입맛을 다셨다.

▽김아라(이하 김)=명절만 다가오면 아홉 살 때 엄마가 해주신 명태순대 생각이 나요. 엄마가 명태 배 속에 다진 명태 눈알과 파를 썰어 넣고 쌀과 함께 쪄냈지요. 그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명태순대였어요. 두고두고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한송이(이하 한)=소금에 절여 햇볕에 말린 청어는 또 어때요. 그거 구워서 쌀밥에 얹어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니까요.

▽신은하(이하 신)=우리 집에선 할머니가 추석 때마다 팥죽을 쑤어서 주셨어요. 감자 전분으로 새알을 만들었는데 그게 어찌나 쫀득하고 고소하던지요. 쌀로 만든 새알보다 영양가도 있고 맛도 있어요.

▽한=우리 집은 비교적 잘살아 깨와 설탕을 넣은 송편을 만들어 먹었는데, 옆집에 주고 싶어도 못줬어요. 소문나면 이웃에게 ‘잘산다고 뽐낸다’는 손가락질 당할까 봐. 먹고사는 게 다들 녹록지 않지요.

▽이서윤(이하 이)=지역마다 다르지만 우리 고향에선 송편에 속을 넣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 대신 절편을 만들었지요. 기름에다 튀겨 약과도 만들고 각종 나물도 무치고…. 그런데 명절 때마다 엄마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음식 하는 게 달갑진 않았어요.

▽신=어릴 적엔 청진에 사시는 친할머니가 명절을 앞두고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싸우기도 했다니까. 할머니는 시댁에 오라고 성화인데 엄마는 먼 길 가는 게 힘들고 불편하다고 버티셨죠. 북한에서도 며느리들의 시댁 스트레스는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이게 다 남자들이 안 도와주니 힘든 거라니까요. 북한에서는 여자가 안팎에서 남성들보다 일을 많이 하잖아. 오죽했으면 남편들을 보고 ‘앉아 있으면 반신상, 서면 동상, 누우면 시체’라는 말을 할까.

▽한=맞아 맞아. 북한에서는 할 일 없이 집에만 있는 남자들을 ‘낮 전등’이라고 부르잖아요. 낮에 켜는 전등처럼 불필요하다는 뜻이지요. 북한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이 돈벌러 나가고 집에서도 일을 하죠. 갈수록 모계사회가 되다 보니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는 일도 많아요.

▽김=남한에 오니 시댁을 ‘시월드’라고 부르던데 솔직히 이해는 안 가요. 아무리 시어머니라도 부모인데 어떻게 싸울 수가 있나요. 음식 만드는 것도 그래요. 맛있는 음식을 다같이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데 그게 왜 힘들다는 거예요. 정성스레 음식 만들어 마을 사람들끼리 반재기(나누기)하고 상에 둘러앉아 젓가락 두드리면서 노래도 하고….

▽김=남한 오니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랑 집에서 텔레비전만 봐요. 난 여기 와서 ‘방콕’이라는 말을 처음 써봤어요.

▽신=나도 명절 때마다 집에만 있으니 서럽더라니까. 북한에서처럼 친구들과 주패(카드놀이) 윷놀이하면서 시끌벅적 노는 것, 그게 진짜 추석인데….

▽이=난 가족 다 두고 혼자 탈북 하니 설날이나 추석이 제일 싫었어요. 언제까지 북한에 남기고 온 가족들만 그리워하면서 추석을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결심했어요. 올해는 꼭 결혼을 해야겠다. 그러면 새로운 가족과 행복하게 추석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언니, 스물여덟 살이면 북한에서는 결혼 적령기 훌쩍 넘은 나이라우.(웃음)

▽이=여긴 남한이잖아. 여기서는 30대 중반이 돼도 결혼 안 한 사람이 많은걸. 아직 꽃다운 나이랍니다. 호호.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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