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서 소개받은 40대 여성과 대낮에 호텔에서 성관계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의원직 제명 위기에 몰려 있는 무소속 심학봉 의원(54·경북 구미갑)은 지난달부터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10∼23일 14일간 진행된 국회 전반기 국정감사 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도, 지역구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본보 취재팀이 심 의원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그는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1.4km쯤 떨어진, 자동차로 5분 거리인 한 오피스텔에 방을 얻어 두문불출하며 지내고 있었다. 심 의원은 바깥출입을 삼가며 끼니는 짜장면 등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종종 보좌진이 심 의원의 자택에 들러 옷가지를 챙겨와 전해주거나 과일 같은 먹을거리를 사들고 오피스텔을 드나들었다.
그는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면 빨간색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얼굴을 가렸다. 갈아입을 양복 정장을 한 손에 들고 빛바랜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연신 주변을 살폈다.
걸어서 10여 분 걸리는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에도 앞 유리창에 국회 출입 차량 스티커가 붙은 제네시스 승용차를 이용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차를 모는 수행비서는 심 의원을 내려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차량이 나타났을 때엔 그늘진 곳에 몸을 감추고 있다 서둘러 승용차에 올라탔다.
변호사로 추정되는 정장 차림의 남성 2명이 임시 거처를 찾는 날에는 5∼6시간이 넘도록 회의가 이어졌다. 모임이 끝난 뒤 심 의원은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며 “소송을 잘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예상되는 질문과 어떻게 답변할지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심 의원은 18일 오후 오피스텔에서 가까운 한 교회를 찾았다가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통화 중에 상대편에게 “5000만 원 선에서 합의할 수 있도록 하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해도 된다. 고생 많았다”라는 말도 했다. 제3자를 통해 피해 여성 측과 합의를 시도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제명안을 의결하자 심 의원은 국회에 소명서를 제출해 “사법기관의 판단을 유보한 채 윤리적 측면으로만 징계한다면 입법기관으로서 존엄과 책무를 포기한 것”이라며 징계 유보를 요청한 상태다.
한편 심 의원의 성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검은 추석 연휴 이후 심 의원을 소환 조사한 뒤 다음 달 초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다음 달 13일 국회 본회의에 심 의원 제명안이 상정되기 전에 수사 결과를 내놓겠다는 얘기다.
검찰은 그동안 피해 여성 A 씨(48·여) 등 관련자들을 조사했지만 심 의원이 강제로 A 씨를 성폭행했다는 진술이나 수천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했다는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7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A 씨를 불러 성폭행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A 씨는 수사 초기 잠적하며 조사를 거부하다 최근 심경을 바꿔 조사에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심 의원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고 사건 이후 회유와 협박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경찰의 최초 조사에서만 “심 의원이 호텔 침대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폭행했다”고 진술했을 뿐 그 이후론 이를 번복한 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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