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TA 선점효과 퇴색… 자동차부품 산업 가장 큰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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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협상 타결]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9월 30일부터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됐다. TPP 협상에 참석한 12개국 경제장관들이 10월 1일(현지시간)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미국무역대표부 제공
9월 30일부터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됐다. TPP 협상에 참석한 12개국 경제장관들이 10월 1일(현지시간)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미국무역대표부 제공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인 약 38조 달러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하게 되면서 여기에서 소외된 한국은 다급한 처지에 빠졌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한국에 뒤졌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이 TPP 합류로 단숨에 한국을 따라잡으면서 세계시장에서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양자(兩者) 협정인 FTA에 주력해온 한국도 새로운 다자질서의 등장에 맞춰 통상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일본과 경쟁하는 업종은 타격 불가피

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아시아태평양 경제 통합 흐름에서 뒤처지게 된 한국은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경제권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경쟁국인 일본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주력 산업이 겹치는 일본이 TPP로 관세 특혜를 받게 돼 한국이 공들여 쌓아놓은 FTA 선점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봉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팀장은 “FTA에 소극적이던 일본이 TPP 체결로 단번에 거대시장을 얻게 됐다”며 “자동차, 전자 등 일본과 경합하는 한국 첨단산업 분야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자동차 부품이다. TPP 협상 타결로 미국에서 일본산 부품 80% 이상에 대해 발효 즉시 2.5%의 수입관세가 철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업체 수주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산 부품의 가격 경쟁력이 커지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 부문에서도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TPP로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미국에서 한국, 일본 업체가 동등한 환경에서 수출 경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미 FTA로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내년부터 완전히 철폐되는 데다 이미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에 공장을 운영 중인 만큼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자업계도 일본과 전 세계에서 경합하기 때문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형 전자업체의 관계자는 “TPP가 발효되면 기존 7∼8% 관세가 붙던 일본 생활가전 제품과 반도체 장비가 무관세가 된다”며 “그만큼 일본 전자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 전자업계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번 TPP 협상 타결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석유화학제품의 90% 이상을 중국에 판매하는데 중국은 이번 TPP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에는 한국에 미칠 영향은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TPP 1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발효했거나 협상이 타결된 상태다. TPP 세부내용이 확정되고 각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발효될 때까지 1∼2년의 시간이 남아있어 한동안은 FTA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협정 내용도 국유기업 우대조치 제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 몇 가지 항목을 제외하고는 한미 FTA의 규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현재로서는 한국이 크게 손해 볼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많다.

○ 새로운 경제전략 수립 시급


TPP 협상 타결로 참여 시기를 저울질하던 한국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최종 협정문이 공개되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최대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TPP와 별개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FTA 등 다른 다자간 협상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선 TPP에 참여하면 ‘누적원산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도 TPP든 RCEP든 새로운 다자간 통상질서에 올라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자간 협상에 참여하면 예를 들어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 베트남에서 조립하고 멕시코로 수출하더라도 모두 역내 거래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상되는 경제효과도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TPP 참여 시 협정 발효 10년 후 국내 실질 GDP가 1.7∼1.8% 증가하지만 불참하면 0.12%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입을 서두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무역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국내 제도와 환경을 먼저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PP의 국영기업 우대조치 제한 규범을 공공기관 구조조정 작업에서 고려하고, 대일 시장 개방에 대비한 중장기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TPP 전략포럼 의장)는 “TPP가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아직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은 셈”이라며 “그사이에 정부와 산업계가 철저하게 대비해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강유현 기자
#tpp#fta#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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