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중의과학원 투유유(屠ff·85·여) 교수와 일본 기타사토대 오무라 사토시(大村智·80) 명예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수상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현지 과학계에서 비주류 대접을 받으며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한 우물을 파고 포기하지 않은 열정이었다.
오무라 교수는 야간고 교사를 지내다 학생들의 손끝에 기름때가 낀 것을 보고 감동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시간을 쪼개 낮에는 대학원 수업을 듣고 밤에는 학생을 가르치며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유학 후 기타사토대에 부임한 뒤에는 연구원 5명과 늘 작은 비닐봉지와 숟가락을 갖고 다니며 출퇴근할 때, 출장 갈 때마다 흙을 채취해 미생물을 연구했다. ‘생애 한 번이라도 약이 되는 성분을 찾아내면 행운’이라는 말과 달리 그의 연구팀이 의약품이나 농약으로 활용되는 화학물질을 26가지나 발견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그는 5일 기자회견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젊었을 때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3배나 더 실패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투 교수는 베이징대 의대 재학 시절 천연약물 연구에 관심을 가져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팠다. 이번에 노벨상을 안긴,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 칭하오쑤(아르테미시닌)를 1971년 발견해 내기까지 무려 190차례에 걸친 실패가 있었다고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는 수차례 원사(院士·중국에서 과학 이공 계통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호칭) 선정에서 낙선했고 박사 학위도 없으며 외국 유학 경험도 없다.
두 사람의 겸손한 언행도 화제다. 투 교수는 6일 중국중앙(CC)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수상은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중국 과학자 전체의 영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중국)에게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소중하고 귀한 재산이 있다”면서 ‘중의약이 위대한 보물창고’라고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발언을 소개했다. 투 교수가 근무하던 중국중의과학원은 1969년 마오쩌둥의 지시로 약초를 이용한 항말라리아제를 개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당시 38세였던 투 교수는 보조연구원 신분으로 참여했지만 빠른 속도로 연구팀장으로 승진해 연구를 이끌었다.
오무라 교수가 노벨상 수상 통보를 받고 처음 한 일은 1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후미코 씨에게 “상을 받게 됐다”고 보고한 것이었다고 한다. 오무라 교수는 “노벨상 시상식에 (아내의) 사진을 가져갈 생각이다. 딱 맞는 사진이 있다”며 품에서 사진을 꺼내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나고야대 특별교수는 오무라 교수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그의 인격, 인생관, 신념에 상을 준 것이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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