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달리 ‘사립’이 많은 한국 대안 없던 급성장 그림자 탓에
주택-학교-병원 등 민간 의존 커… 정부가 감독기능 제대로 되살려
저질기관 퇴출에 적극 나서야 ‘돈벌이 민간 시설’ 없앨 수 있어
물건이든 서비스든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공급하기보다 가능하면 민간의 손을 빌려왔다. 경제가 한참 발전할 때 경제사업에 드는 돈을 조달하기에 급급하기도 했지만 원체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재정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만 해도 정부 재정의 반 이상을 원조 자금으로 채운 해가 드물지 않았다. 주택, 학교, 병원 등 민간의 자본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정부는 주로 감독 역할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서구에서 정부가 직접 주택, 학교, 병원을 공급한 것과 대조된다.
그게 잘한 일인지는 의미 없는 질문이다. 어차피 우리에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 분명한 것은 어떤 모델이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서구 국가들도 재정 압박이 심해지면서부터는 정부의 직접공급에서 민간 부문으로 옮아갔다. 정부 공급 위주 모델은 자본주의 황금기였던 제2차 세계대전 후 30년 호황기로 수명을 다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이나 공공병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훨씬 낮다는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정부의 직접공급 비중이 낮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 경로가 갖는 특성일 뿐이며,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고령화로 재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불거지는 문제는 그간 빠르게 확대되어 온 사회서비스 부문이다. 보육이나 장기요양은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정부 지원이 확대되는 바람에 수요가 급증했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부채비율 제한을 푸는 등 진입 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결과는 영세 기관의 난립이었다. 특히 어린이집의 경우 중년 여성들이 분식집이나 치킨집 개업의 대안으로 선택할 정도로 ‘생계형 진입’이 일어났다.
예전에 학교나 병원, 주택 공급이 주로 지역의 유지나 법인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이 생계형 공급자들은 ‘사회서비스’라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별로 없다. 원장의 가족들을 어린이집 직원으로 위장하거나 원장네 생활비를 어린이집 운영비용에 얹는 식으로 정부 지원금을 빼돌려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더구나 영세 기관들이 창궐하면서 4만여 명의 어린이집 원장은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이해집단으로 똘똘 뭉쳤다. 정부의 감독 기능이 어린이집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공의식이 낮은 이들 이해집단이 국회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도 번번이 실패했다. 선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시간 무상보육 지원 확대가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작년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들은 사고가 아니라 결국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민간 어린이집의 서비스 질이 낮고 툭하면 단체행동을 일삼는 공급자들로 골치가 아프니 공공어린이집을 더 짓자는 것은 정공법이 아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공급을 민간이 제공하는 이상 제대로 된 관리감독으로 이들의 질을 높이고 저질 기관을 퇴출시키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교육이나 의료, 주택 등 국가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부문에서 정부는 이러한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해왔다. 그런데 유독 어린이집과 장기요양시설에서 질 낮은 서비스와 학대가 난무하는 것은 급작스러운 확대로 인해 감독 기능이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전업주부의 보육지원 시간을 맞춤형으로 차등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이런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간 공급자들에게 휘둘리고 입법적 노력도 국회에서 좌절되기 일쑤였던 정부-공급자 관계가 미약하게나마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 속에서 보육의 중요성과 지원 체계의 문제점, 정부 감독 역할의 취약성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된 덕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은 움직임을 키워 더 중요한 개혁을 이루는 것이다. 무엇보다 평가 결과가 일정 수준 이상인 기관에서만 보육지원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게끔 제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이상 공급자 수준에 한도를 두는 것은 어느 선진국에서나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시행하지 못해 왔다. 이를 위해 평가 기준과 도구를 개선하는 것 역시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경제 개발 이후 정부와 민간의 관계는 우리 나름의 방식을 확립해왔다. 무원칙한 지원 확대가 낳은 왜곡을 시정하고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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