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정치 입문 이후 3차례의 이념전쟁을 펼쳤고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역사교과서 국정화 카드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4번째이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이념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아 ‘이념전쟁’을 진두지휘하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유전적 자산’ 위에 ‘보수의 가치’라는 자신의 성(城)을 쌓아 올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고 나오자 강경 투쟁으로 맞섰다. 2005년 국보법을 위반한 강정구 전 교수 불구속 수사 지휘가 논란이 되자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체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무너뜨리겠다는 것인가”라며 “구국 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정부와의 전면전 선포였고 국보법은 존치됐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보수층 결집을 꾀했다. 진보 진영이 평화를 얻기 위해 해상의 영토분계선을 포기하려 했다는 주장을 통해 ‘종북 논란’을 대선 막판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켰고, 궁극적인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조각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도 ‘이념전쟁’을 위한 승부수였다. 황 총리는 강 전 교수의 구속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검사장 승진에서 두 차례나 탈락한 검찰 내 대표적 공안통. 박 대통령은 2013년 11월 황 총리를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내세워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오자 “자유민주주를 지켜 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정윤회 동향 문건’ 사건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통진당 해산 결정은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 지지율 하락세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 역할을 했다.
통진당 해산으로 현재 정치 지형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미래 정치지형을 지키기 위한 진지전의 성격이 강하다. 국정화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교육부마저 국정화를 주저하고 있지만 후세를 위해 ‘정상적인’ 역사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다.
문제는 ‘역사적 퇴보’라는 야당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젊은층일수록 거부감이 크다는 점도 여권이 넘어야 할 산이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검정제 유지(43.1%)와 국정 전환(42.8%)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20대와 30대에서는 검정제 유지 의견이 각각 60.3%, 57.3%로 크게 높았다.
박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사실상 마지막 이념전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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