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염한웅]한국인 노벨 과학상, 20년내 가망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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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노벨상 시즌에 일본 과학자가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2002년 이후 14명이나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중국 과학자가 처음으로 수상하면서 왜 우리는 총 21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못한가 하는 고민과 자책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한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계단 끌어올리는 일을 책임지고 2011년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장 24명 중 한 사람으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

필자는 국내 현역 학자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도쿄대에서 조교수로 4년을 지내 일본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춰봤을 때 한국에는 현재 노벨 과학상을 받을 후보가 없다. 일부 언론에서 누가 노벨상에 근접했다고 하는 보도는 사기나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수상 가능성이 있는, 높은 수준의 연구 업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지난 50년간 수행된 연구 중 이런 업적은 거론된 바가 없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올해 발표한 우리 과학기술 역사 전체를 대표하는 업적에도 이런 수준의 연구는 없다. 최근 필자는 이 결론을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의 국내 학계 최고 권위자들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자는 논외로 했다.

수상 가능한 업적이 현재 없다면 이제부터 이런 업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누구라도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걸린다. 업적이 나온 후 평균 15년 정도가 지나 노벨상을 받는다는 통계에 따르면, 우리 과학계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최소 20년에서 25년 뒤가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말을 진작 과학계가 언론에, 정부에, 국민께 했어야 했는데 침묵하거나 듣기 좋은 덕담만 해 국민을 ‘희망고문’했다.

그럼 당장 노벨상도 받지 못하는 우리 과학계는 정말 ‘찌질’하며 정부가 그간 투자한 막대한 연구비는 허비된 것인가? 이런 반문은 논리의 비약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국내 과학계는 엄청나게 노력해 왔고 정부도 연구비 지원과 정책으로 뒷받침했다. 그 결과 1990년 이후 2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국 과학계는 과학의 후진국에서 세계 10위의 과학대국으로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이 노력을 폄하하는 어떠한 발언도 자존감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성인이 되겠다는 유치한 어리석음이다.

필자가 대학원생으로, 교수로 경험한 일본의 과학과 과학자, 대학, 연구소, 정부 정책은 우리보다 크게 낫거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꾸준한 노력과 1950∼70년대의 경제성장 덕분에 노벨상 수상이 가능할 정도의 업적을 낼 수 있는 수준에 우리보다 30∼40년 먼저 도달했을 뿐이다. 아주 최근에야 이런 수준의 초입에 도달한 우리는 일본을 시샘하지 말고 한 수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굳이 일본일 필요도 없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미국 독일 등 소수 과학 선진국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창의의 정신과 과학 전통이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 유망하다고 하는 연구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하고 스스로 유망한 분야를 개척하는 정신이고 이것이 과학의 진정한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이는 국내 산업계의 최대 화두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의 전략 수정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면 꾸준히 기초과학에 지원하는 것이며 과학이 과학다워지도록, 과학자가 과학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일 뿐이다. 참으로 쉬운 얘기 아닌가?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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