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미국 방문에 앞서 열린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는 ‘내부 단속’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의를 시작하며 “국내에 여러 중요한 이슈가 산적해 있어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미국으로)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박 대통령이 순방 직전 수석비서관회의를 연 건 매우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18일 새벽 귀국한다. 전날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발표로 촉발된 여야 간 ‘역사전쟁’이 최고조에 달할 시기에 국내를 비우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역사전쟁에 임하는 여권에 3가지 키워드를 던졌다.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 △통일을 대비해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필연적 사명 △국민 통합의 계기가 그것이다. ‘야권의 파상공세에 맞서 3가지 키워드로 대국민 여론전을 펴라’고 강조한 셈이다.
역사전쟁으로 여야가 가파르게 대치하면서 노동개혁 등 4대 개혁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세부 지침’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5대 법안과 관련해 “그동안 많은 경제적 사안이 정치적으로 묶여 매듭을 풀지 못한 것이 많았다”며 “(노동개혁은)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 교과서 논쟁과 개혁 과제의 ‘분리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한중, 한-뉴질랜드,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한중 FTA 비준이 늦어지면 당장 하루에 자그마치 40억 원의 손해를 본다”며 구체적 수치를 들어 국회의 ‘직무유기’를 꼬집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새누리당이 민생을 지렛대로 야당을 압박해 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순방 직전 ‘내부 단속’에 나선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올해 4월 16일 중남미 순방 때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40분간 독대하는 ‘깜짝 행보’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김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사실상 첫 번째 독대였다.
중남미 순방 직전 박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거취 논란이 불거진 것. 여권에서마저 ‘자진사퇴론’이 나와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출국 당일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인 점도 논란거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때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 여당의 ‘내부 단속’을 부탁했다.
지난해 9월 20일 캐나다 미국 순방 직전에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서울공항에서 만나 10여 분간 따로 대화를 나눴다. 당시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으로 마비 상태였다.
국내 위기 상황에서 출국할 때마다 김 대표의 손을 잡았던 박 대통령은 이번 역사전쟁에선 직접 나섰다. 40%대 지지율로 인한 국정 자신감과 김 대표와의 미묘한 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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