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등장하는 ‘큰언니 지원군’… 은행 창구가 환해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3시 00분


[2015 리스타트 다시 일하는 기쁨]<3>시간선택제 채용에 적극적인 은행권

올해 신한은행 시간선택제 소매서비스(RS)직 2기로 뽑힌 행원들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고객 응대법을 배우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3년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현재 351명을 채용했다. 신한은행 제공
올해 신한은행 시간선택제 소매서비스(RS)직 2기로 뽑힌 행원들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고객 응대법을 배우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3년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현재 351명을 채용했다. 신한은행 제공
국내 한 카드사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던 6년 차 직장인 김모 씨(30)는 2013년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전문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그는 마침 정규직 전환 시점이 출산과 맞물렸다. 김 씨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일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곧 출산하면 육아휴직도 해야 할 텐데…. 정규직 전환은 힘들 것 같다”는 회사 측의 말을 듣고 마음을 접어야 했다.

출산으로 직장을 포기해야 했던 김 씨는 지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슈퍼맘’이 됐다. 신한은행에서 도입한 시간선택제 덕분이다. 지난해 6월 신한은행에 입사한 김 씨는 낮 12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영업점 창구에서 일한다. 연봉은 1600만 원 남짓.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다른 전일제 행원들과 마찬가지로 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김 씨는 “다른 직장에 조건이 좋은 전일제 일자리가 있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며 “다른 ‘직장맘’처럼 이른 새벽에 잠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건 이제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권에서 일하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들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시간선택제 근무를 속속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슈퍼맘’ 지원하는 은행들

신한은행은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시간선택제를 가장 먼저 도입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1년 여성 행원들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했다. 육아휴직(2년) 중에 복귀를 원할 경우 남은 휴직 기간을 시간선택제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일제 근무로 연착륙하기 위한 일종의 적응기간이다. 현재 신한은행에서는 180명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이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또 2013년 아예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새로 뽑는 ‘신규형’을 도입했다. 시간제 소매서비스(RS) 직군인 이들은 총 351명으로 모두 정규직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확보하고 바쁜 업무 시간대에 고객 편의도 높일 수 있었다”며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점차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시간선택제 근로자 고용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기업은행은 2013년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뒤 총 248명을 고용했다. 신한은행과 마찬가지로 복지와 정년이 보장되는 사실상 정규직이다. 대부분 영업점 창구에서 근무하는 타행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달리 기업은행의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전일제 행원과 동일하게 본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기업은행에 시간선택제로 입사한 유모 씨(43)는 과거 8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육아로 13년간 경력이 단절됐던 그는 “자녀가 중학생이 되니까 사회생활에 대한 미련이 생기더라”고 밝혔다. 유 씨는 오랫동안 전업주부 생활을 한 것이 고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한번은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이 있었다. 만약 신입직원이었다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을 텐데 제 또래 여성이었다”며 “차분히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니 결국 소통이 됐다”고 말했다. 경단녀이기 때문에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시간선택제 고용 확대해야

신한은행과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도 시간선택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우리은행은 370명을 채용했고, 올해 추가로 130명을 뽑을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1∼6월) 공채에서 시간선택제 200명을 채용했고, 현재 진행 중인 하반기(7∼12월) 공채에서도 비슷한 규모로 채용할 예정이다. 다만 이들 은행에서 뽑는 시간선택제의 근무 기간은 모두 2년이다.

올해 한 시중은행에 시간선택제로 입사한 박모 씨(42)는 “새 삶을 되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육아휴직 중이었던 그는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에 회사를 그만뒀다가 18년 만에 직장인으로 복귀한 셈이다.

하지만 박 씨는 이 생활이 짧은 꿈으로 끝나진 않을까 불안하다. 함께 입사한 동기 가운데 2년 뒤 누가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고용이 보장되는 질 좋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은행권이 먼저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내년 7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의 고용 연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무기한 시간선택제를 도입하지 못했지만 경영지표가 나아지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며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

▽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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