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달 정도가 흘렀지만 지난달 초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중국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나 에어쇼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국군의 각종 열병식과 훈련 이벤트를 보아온 기자의 눈에 그것은 평범할 뿐이었다. 기자에게 큰 울림을 준 것은 열병식 전날의 TV 방송 화면과 열병식에서 중국인들이 보여 준 ‘과거에 대한 존경’이었다.
기자는 톈안먼 동쪽의 호텔에서 중국 방송을 시청했다. 흑백 필름으로 기록된 항일전쟁 당시의 화면이 현대 군대의 칼라 동영상과 교차 편집돼 계속 나오고 있었다. 중국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인 듯했다. 중국 국가를 부른 미국 흑인 가수 이야기도 나왔다. 화면 속의 폴 로브슨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1976년 사망한 사람이다. 1941년 발매된 ‘일어나라, 신 중국’이라는 앨범에 실린 중국 국가가 미국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그가 생전에 미국에서 유명한 가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열병식이 있을 무렵 한국에서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의 친일 논란이 또 일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이후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외국인은 고사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동시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와 상징 음악을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중국의 ‘굴기’는 과거와 현재의 합일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열병식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 출신을 포함한 항일전쟁 노병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휠체어와 보청기를 하고 있는 노병들에게 70주년 기념훈장을 수여했다. 빨간 카펫 위에서 의식이 엄숙하게 치러졌다. 그 뒤로는 붉은 넥타이를 맨 어린이 합창단이 서 있었다. 열병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노병이 젊은 군대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무개차를 탄 80, 90대의 남녀 노인들이 군인, 시민들을 향해 주름 잡힌 손을 흔들거나 거수경례를 했다.
행사를 참관하던 베이징 시민들도 무기가 지나갈 때와는 사뭇 다른 크기의 박수를 보냈다. 망원렌즈를 통해 그들의 얼굴을 봤다. 내가 만든 나라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박수 소리의 크기는 윗세대에 품은 존경심의 크기처럼 느껴졌다.
지금 세계는 각각의 국가가 갖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자산을 잘 활용해 미래를 향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 이른바 ‘국정 교과서’ 논쟁이 떠올랐다. ‘하나 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시도에 색깔론이 덧붙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역사에 대한 자존감과 용서는 없어 보인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교육부 장관이 이 시도를 끝까지 책임질 힘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있는가. 갑자기 중국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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