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돌아오실 날 기다리며 이사도 안 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3시 00분


[남북 이산가족 상봉]北남편 만난 이순규-이옥연씨

“혼자서 아들 키웠구려” 20일 강원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한 측 채훈식 씨(오른쪽)가 자신이 받은 표창장을 남쪽 아내 이옥연 씨(가운데)와 아들 희양 씨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혼자서 아들 키웠구려” 20일 강원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한 측 채훈식 씨(오른쪽)가 자신이 받은 표창장을 남쪽 아내 이옥연 씨(가운데)와 아들 희양 씨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고동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순규 씨(85·여)가 의자에서 일어나 입구 쪽을 자꾸만 바라봤다. 65년을 기다렸는데…. 그런데도 더는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20일 오후 3시 30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대연회장에 ‘반갑습니다’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북한 가족이 입장했다.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남북 가족이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씨의 남편 오인세 씨(83)가 들어섰다. “내 아들이니?” 오 씨는 먼저 아들 장균 씨(65)를 보자마자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부둥켜안아 들어 올리려 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랑 똑같이 닮으셨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오 씨에게 절을 했다.

○ 65년 만에 만난 부부, 처음 만난 부자

테이블에 앉은 오 씨는 이 씨에게 “가까이 와서 앉으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주름진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부부가 함께 산 건 고작 반년. 충북 청원군에서 살던 오 씨는 열흘만 북한 인민군의 훈련을 받으면 된다던 이웃에게 이끌려 집을 나간 뒤 6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장균 씨가 배 속에 있었다. 남편이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오 씨는 이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라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오래된 놋그릇, 구두, 장기알 등 남편의 소지품을 고이 간직해 온 이 씨였다. 그런데 막상 남편을 만나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65년 만에 만났는데, (아직은) 그냥 그래요. 보고 싶었던 것 얘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부재를 느끼지도 못했다던 장균 씨. 아버지를 만나자 아버지 없이 지낸 오랜 세월에 대한 원망이 스르르 녹아 버렸다. 장균 씨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 멈추지 않는 회한의 눈물

이옥연 씨(88·여)는 1950년 8월 “잠깐 일 보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던 북한의 남편 채훈식 씨(88)를 만났다. 결혼 5년 만이었고 아들 희양 씨(65)가 한 살 때였다.

짙은 회색 양복 차림의 채 씨는 희양 씨가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라고 하자 한참을 오열했다. 중절모가 벗겨진 것도 모를 정도였다. “인사드립니다”라는 며느리와,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손자들을 보자 다시금 울음이 터졌다. 손수건은 이미 흠뻑 젖었다.

하지만 부인 이 씨는 고개를 돌렸다. 평생 남편을 기다려 왔던 이 씨는 재혼한 뒤 북한 며느리와 함께 나타난 채 씨에게 못내 서운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북한에 갔는지 묻고 싶다”던 이 씨는 말을 잃었다. 채 씨가 손을 내밀었지만 “이제 늙었는데 손 잡으면 뭐 해”라며 뿌리쳤다.

이 씨는 경북 문경시에서 남편과 살던 집터에 새로 집을 짓고 평생을 지냈다. 남쪽 며느리 정영순 씨(63)가 “아버님이 혹시 돌아오시면 못 찾을까 봐 재혼도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하셨다”고 전하자 채 씨는 눈물만 흘렸다. “너희 어머니가 나 없이 혼자 가정을 책임지고…. 아버지를 이해해 다오.” 상봉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채 씨와 이 씨는 귓속말을 속삭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유일하게 부부 상봉이자 부자 상봉이었던 두 가족은 이날 저녁 ‘환영 만찬’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차례 더 만났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만찬에서 “이산가족들이 생사 확인부터 시작해 편지도 교환하고 나아가 자유롭게 상봉하는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북한 대표인 이충복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길마저 끊어져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어려웠던 이유가 금강산 관광 중단 때문인 것처럼 전가하려는 발언이었다.

만찬이 끝나기 직전인 오후 9시 20분. 김 총재는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 이 아쉬움을 담아 다 같이 아리랑을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이산가족들이 손을 맞잡고 부른 아리랑이 대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금강산=공동취재단
#남북이산가족#이산가족#이산가족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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