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실시된 캐나다 총선에서 2006년부터 집권한 스티븐 하퍼 총리는 1971년생 ‘훈남’ 정치인 쥐스탱 트뤼도 자유당 당수한테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긍정의 정치’를 강조한 차기 총리의 승리 연설도 훌륭했으나 하퍼 총리의 승복 연설도 인상적이다. “오늘 밤 결과는 분명 우리가 희망한 것이 아니지만 국민들은 결코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미국 대선에서는 승복 연설이 나온 뒤에 승리 연설을 한다. 후보의 연설문 팀은 대개 승리와 패배, 두 개의 연설문을 준비한다. 승복 연설은 통합을 강조하면서 품위와 겸손 등 3대 요소를 갖춰야 한다. 2000년 대선에서 연방대법원 판결로 승리를 ‘빼앗긴’ 앨 고어는 “법원 결정에 결코 동의할 수 없으나 받아들인다”는 승복 연설로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방금 전 부시 후보와 통화해 43대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드렸다. 그리고 이번엔 절대 다시 전화 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첫 대목은 널리 회자됐다. 당초 개표방송을 보고 부시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가 방송사의 잘못된 예측이란 사실을 알고 또 전화를 걸어 축하를 번복했던 과거를 빗댄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이명박 후보에게 졌던 박근혜 대통령도 승복 연설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 당의 정권 창출을 위해 힘을 합쳐 주십시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제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패자(敗者)의 멋진 연설은 지지 후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패배를 인정한다. 국민께서도 이제 박근혜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고 언론에선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도 잊을 만하면 ‘개표 부정’ ‘대선 불공정’이란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우리에게는 깔끔하게 승복하는 정치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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