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반 북한 금강산호텔. 이산가족들이 북한 가족들을 남겨둔 채 하나둘 버스에 올랐다. 12시간의 짧은 만남이 끝났고 다시 헤어질 시간이었다. 누구랄 것 없이 대부분이 버스 창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리면서 북한의 가족을 애타게 불렀다.
북한의 부인 한음전 씨(87)를 “우리 예쁜이”라고 부르면서 “둘 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만났으니 원 없다”던 전규명 씨(86). 이날 마지막 작별상봉 시간에도 눈물을 비치지 않고 담담했던 이들 부부도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구급차에 누워 떠날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려고 움직이던 한 씨는 휠체어에서 떨어져 넘어졌다. 부축을 받아 남편 전 씨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전 씨는 “울지 마”라며 한 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 만나질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지지 않는 건데….” 고개를 돌린 전 씨도 눈가를 훔쳤다.
43년 전 오대양호를 타고 조업 중에 납북됐던 정건목 씨(64)는 “아들이 이렇게 건강해요”라며 큰소리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어떻게 북으로 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을 수 없었던 어머니 이복순 씨(88)를 위로하는 말이었다. ‘납북’이라는 말이 적힌 편지를 받고 정 씨가 “이거 아니야”라고 당황해하자 가족들이 편지를 다시 가져와야 했을 정도로 통제된 만남이었다. 버스 탑승이 시작되자 이 씨는 아들 건목 씨의 무릎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 어깨를 토닥이던 건목 씨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석한 이산가족들이 겪을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리상담사를 상봉자 전원(643명)에게 보내 심리 상태를 확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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