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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주제는 ‘공공 에티켓’]<208> 장애인 위해 비워두세요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요.”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화장실을 찾았다. 굳게 잠겨 있는 대변기 칸막이 위를 살펴봤지만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흡연자가 자리를 떠났다고 생각한 순간 장애인용 화장실에서 앳된 얼굴의 10대 청소년 3명이 나왔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곧바로 그들은 지하철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머물렀던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장애인화장실 안에는 뿌연 연기와 함께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 가래침도 보였다.
공공기관 등에 의무적으로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하도록 한 것은 1998년부터다.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장애인화장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비장애인이 많다. 다른 공용화장실보다 공간이 넓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금연구역이 늘면서 졸지에 흡연장소로 전락한 장애인화장실도 많다.
하루 평균 약 100만 명의 유동인구가 몰리는 지하철 강남역 내 화장실 상황도 마찬가지. 1일 오후 전동휠체어를 탄 김현상 씨(47·장애2급)는 한참 동안 장애인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20분이 지난 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아무 불편이 없는 비장애인이었다. 답답함과 서운함이 앞섰지만 어쩔 수 없이 김 씨는 휠체어를 화장실 안으로 옮겼다. 버튼을 눌러야 문이 닫히는 출입문은 채 닫지도 못했다. 김 씨는 “우리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그냥 지퍼 한번 내려 용변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장애인화장실은 장애인을 위해 비워둔다는 기본적인 에티켓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아 서글프다”라고 말했다. 이곳을 청소하는 서경숙 씨(50·여)가 전하는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멀쩡한 대변기를 놔두고 바닥에 용변을 보거나 휠체어 이동 때 필요한 손잡이를 망가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취객들이 구토를 하거나 아예 잠을 자고 있는 경우도 있다. 먹고 남은 족발 등 쓰레기 때문에 변기가 막히는 일도 장애인화장실에서 자주 목격된다. 서 씨는 “(비장애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화장실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조심해서 쓰지는 못할망정 더 함부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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