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창현 씨(19)는 서울지하철 건대입구역 근처를 지날 때면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고 걸음을 재촉한다. 지난해 말 서울 광진구가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 흡연실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흡연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비매너’ 흡연자가 적지 않은 탓이다. 김 씨는 “흡연실이 있는데도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강하게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연구역 확대에 발맞춰 최근 2, 3년 사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흡연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흡연자는 비좁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흡연실을 외면하고 있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2일 찾은 건대입구역 흡연실. 10m²(약 3평) 남짓한 밀폐된 공간에서는 20, 30대 5, 6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 시내에서 비교적 잘 운영되는 흡연실로 꼽히지만 여기서도 흡연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무 발자국가량 떨어진 인근 작은 공터는 아예 흡연자들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다. ‘금연마당’이라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20여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바닥과 화단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이곳을 지나가던 전승희 씨(20·여)는 “사우나 문을 열었을 때처럼 자욱한 담배 연기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다”며 “이곳에 오면 담배 연기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고 말했다.
흡연자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흡연 3년 차인 정재일 씨(23)는 “저도 담배 연기가 싫은데 비흡연자들은 오죽하겠느냐. 이들을 생각하면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흡연실 수를 늘리고 열악한 시설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시내 공공장소 중 시나 구 차원에서 설치한 흡연실은 서울시청, 건대입구역, 동서울터미널 등 5곳뿐이다. 서울역 광장,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 해당 시설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곳을 모두 합쳐도 10곳 미만이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에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구체적인 설치 방법, 사후 관리에 대한 규정은 전무하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위원은 “꼭 필요한 장소에만 흡연실을 설치하되 입지 선정부터 설계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유지 관리와 계도가 병행돼야 흡연실을 만든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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