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종 싱싱한 채소 1000원씩 판매… 맞벌이-싱글족 북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5>평택 송북시장 ‘준농장’ 안영준 사장

29일 경기 평택시 송북전통시장에서 만난 ‘준농장’ 안영준 사장이 미소짓고 있다. ‘60가지 채소, 1000원 코너’로 주부들의 입소문을 탔다. 평택=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9일 경기 평택시 송북전통시장에서 만난 ‘준농장’ 안영준 사장이 미소짓고 있다. ‘60가지 채소, 1000원 코너’로 주부들의 입소문을 탔다. 평택=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전통장이 서던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지산동 송북전통시장 ‘준(JUN)농장’ 앞.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끊임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호랑이콩 없어요? 다 나갔어요?” “오늘 버섯이 좋네. 버섯 여러 종류로 가져가야겠다.” 활기찬 대화가 이어졌다. 어떤 주부는 작은 손수레 가방을 갖고 들어와 채소 7가지를 가득 넣어가기도 했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와 안 되는 가게의 차이는, 손님이 쉽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값이 비쌀 것 같아 선뜻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안에 진열해 놓은 상품이 구미가 당기지 않아 망설여질 때도 있다. 준농장은 달랐다. 가게 안으로 일단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 적은 돈으로 많이 살 수 있게 포장


가게 앞에는 ‘각종 채소가 1000원씩’이라는 푯말이 문에 붙어 있었다. 활짝 열린 문으로 채소 코너가 가게 정중앙에 모여 있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쌈채소 코너를 확장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채소가 아닌 공산품은 벽면을 따라 진열되어 있었다.

우선 채소에서 나오는 냉기와 풀냄새가 어우러져 코를 자극했다. 화려한 포장지로 감싸지는 않았지만 투명 비닐로 작게 포장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오이 세 개, 가지 세 개 등 1000원에 맞춰 물건이 랩으로 정성스레 싸여 있다. 호박만 사러 들어왔다가도 양상추나 브로콜리를 보면 절로 ‘견물생심’이 들었다. 2, 3개는 기본으로 바구니에 더 담게 됐다.

준농장의 강점은 적은 돈으로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전통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싸긴 하지만 반 근이나 한 근씩 달아 팔다 보니 양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사다 보면 비닐봉투가 많아지고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고 젊은 사람들은 꺼린다.

준농장은 크기와 가격을 줄였다. 적은 돈으로도 다양한 반찬을 이것저것 해먹을 수 있다 보니 가정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가게가 됐다.

준농장 안영준 사장(45)의 아이디어는 알고 나면 사실 비결이 따로 없다. “좋은 물건, 싸게 준다”는 기본원칙을 지킨 것뿐이기 때문. 안 씨는 “30대에 처음 시장에 가게를 열고 난 뒤 8년 중 6년은 실패를 거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힘들게 농사지었지만…

원래 안 씨는 청년농부였다. 1997년부터 오이 상추 호박을 부모님과 함께 정성스레 키웠다.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농부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적었다. 가격이 폭락하면 생산비도 못 건졌다. 반면에 유통 과정이 길다 보니 소비자들은 비싸게 사고 있었다. ‘내가 직접 손님들에게 판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송북전통시장에 채소가게를 열고 식당과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팔았다. “다른 곳은 시들한데 이 집 상추는 어쩌면 이렇게 신선하냐”는 반응과 함께 거래처가 점점 늘었다. 그러나 단골이 생길 만하면 또 발길이 뜸해졌다. 안 씨는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지 못했는데, 불친절하다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가게 구조도 문제인 것 같았다. 7, 8년 전 처음에는 채소를 가게 밖에서 작게 코너를 만들어 놓고 싸게 팔았다. 그러나 손님들이 밖에서만 1, 2개 사가고 가게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포장을 한 것이 아니라 상자 안에 넣어두고 “산다”고 하면 꺼내 주는 방식이었다. “1000원어치만 달라”고 해도 흔쾌히 팔 마음이었지만 큰 상자를 본 손님들은 “한 근 주세요”라고 말했다. 조금만 달라고 하면 주인이 싫어할까 봐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한 달, 한 달 어렵게 운영하다 보니 안 씨의 마음속에도 걱정이 생겼다. ‘나와 맞지 않았던 걸까’ ‘어떻게 해야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올까’ 매일 조금씩 배치를 바꿔보았다. 그렇게 1년 반 전에 깨달은 것은 손님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정중앙에 대형 채소 코너를 만든 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안 씨는 “도시뿐 아니라 지방에도 점점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다”며 “포장 크기가 크면 반절은 결국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야 했다며 반가워하는 주부가 많다”고 말했다.

○ 버섯-당근 등 마진 거의 없는 품목도

준농장은 농부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대폭 줄였다. 대파 쪽파 부추 상추 등 지금도 부모님이 수확한 농작물 중 일부는 가게에서 판매한다. 로컬푸드도 적극 활용한다. 평택시 송북전통시장 근처에는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 많다. 오전 3시에 농산물 시장에 가서 지역상품을 사서 바로 그날 내놓는다.

‘서비스 품목’도 있다. 버섯과 당근 등 1년 내내 싼 가격으로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품목이 몇 가지 있다. 가벼운 주머니로도 풍성한 저녁을 만들게 하자는 것, 그것이 안 씨의 장사철학이다.

전통시장에서 시작한 그의 꿈은 이제 인터넷으로 향하고 있다. ‘준농장’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는데, 9900원으로 ABC 박스 세트를 전국으로 배송하는 것이 목표. A세트는 쌈채소 10가지, B세트는 버섯 종류, C세트는 고추 오이 호박 가지 당근 등 10가지를 묶었다. 소비자는 웹사이트에서 세 개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9900원에 배송비를 부담하면 집에서 신선한 채소를 맛볼 수 있다.

평택=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채소#판매#싱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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