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이대호는 프로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라운드를 떠날 뻔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몸과 몸을 부딪쳐야 하는 운동선수는 부상을 늘 달고 산다. 부상으로 은퇴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대호를 은퇴까지 몰고 갈 뻔했던 부상은 남달랐다. 아니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더 맞다. 무리하게 체중을 빼다 당한 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리한 체중 감량은 이대호를 지도하던 감독의 지시로 벌어졌다. 당시 그 감독은 ‘살이 쪄서는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잣대에 이대호를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 롯데 시절 이대호는 130kg에 가까운 큰 덩치에도 물 흐르듯 부드러운 타격 폼으로 도루를 빼고 타자가 받을 수 있는 상을 모두 휩쓸었다. 물론 체중 감량을 지시한 감독이 롯데를 떠난 뒤였다. 지금도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이대호 덕분에 이제는 누구도 체중이 타격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세운 서건창은 타격 자세로도 화제가 됐다. 야구 교본은 물론이고 선수의 개성을 존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타격 자세는 스스로 만든 것이다. 자신만의 타격 자세를 고안하기 전에도 서건창은 신인왕을 받을 정도로 정상급 타자였다. 그런 만큼 타격 자세를 고치는 것은 서건창에게나 소속 팀에나 모험이었다. 그런데도 서건창이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에게 더 맞는 자세를 찾는 동안 감독과 코치 누구도 그의 모험을 말리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 초창기 때만 해도 타자들의 타격 자세는 오른손 타자와 왼손 타자를 가리지 않고 비슷했다. ‘오리 궁둥이 타법’으로 유명했던 김성한 전 KIA 감독만이 유일하게 특이한 타격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수들이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야구 교본에 나오는 타격 자세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도자들이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비단 야구만이 아니었다. 모든 종목에서 똑같았다. ‘스포츠는 폼’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프로야구에서는 선수들의 타격 자세가 제각각이다. 서건창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매년 시즌이 끝난 뒤 타격 자세를 조금씩 바꾼다. 이 과정에서 소위 ‘FM(Field Manual)’이라고 말하는 정석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렇게 된 데는 선수들의 노력이 컸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생각을 바꾼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선수들에게 교본에 나오는 타격 자세를 고집하는 프로야구 지도자는 이제 없다. 그 대신 선수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 타격 자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 됐다. 요즘 유행하는 ‘창의력 교육’이 이미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야구가 올림픽 정상에 오르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정상급 야수가 된 데는 바로 이러한 창의력 교육이 큰 힘이 됐다.
야구 교본은 야구의 발상지인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그 교본은 프로야구 출범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수준 차이는 30여 년 사이 급속도로 좁아졌다. 현장 지도자의 변화 덕분이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학교 교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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