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심판론’을 꺼낸 1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록엔 박 대통령의 자필 메모가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날 아침까지 직접 발언록을 수정했다는 얘기다.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해 달라”는 표현도 박 대통령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잇따른 ‘총선 심판론’ 메시지에 부응하듯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면서 새누리당 내 ‘물갈이’ 움직임은 파도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은 경부선을 타고 부산과 서울 등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현역 의원 25%를 공천 탈락시키는 ‘인위적 물갈이’를 단행했다. 당시 현역 의원 교체율은 41%에 달했다. 이번에는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워 비박(비박근혜)계에 대한 ‘선별적 물갈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진실한 사람들’ 발언 이후 여권에선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진박(진짜 친박)과 가박(가짜 친박)’ 선별 작업에 나섰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진박 명단이 담긴 ‘찌라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국회 주변에선 “사단법인 ‘진실한 사람들’이라도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내년 총선의 총지휘자 격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비박계 일부에선 “전략공천은 절대 없다고 하던 김 대표가 결국 박 대통령의 공천 지분을 일정 부분 인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시선을 보낸다. 김 대표는 9일 한 행사에서 심윤조(서울 강남갑) 김종훈 의원(강남을)을 가리켜 “전략공천을 해도 이런 분들만 하면 내가 절대 반대 안 하겠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김 대표 측은 뒤늦게 “두 의원이 얼마나 훌륭한지 반어법을 써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비박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말을 바꿔야 김 대표 아니냐”며 최근 몇 차례 자신의 발언을 번복해 온 김 대표의 태도에 일침을 놓았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물갈이는 오로지 주민과 국민만이 할 수 있다”며 “(청와대가) 만약 한 명이라도 전략공천을 하려 한다면 대표직을 내놓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누구든 공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현역 의원을 강제로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것.
이 관계자는 “‘물갈이론’이나 ‘전략공천’의 군불을 지피는 일부 친박계 의원들과 박 대통령의 생각이 같다고 보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의 ‘총선 심판론’에 편승해 호가호위하는 친박 의원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분리대응’해 온 기존 스탠스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 측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쯤 공천 룰 논의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필승 공천’을 명분으로 대폭적인 물갈이를 요구하는 친박계와 민심 반영 비율을 높인 100% 경선을 실현하려는 김 대표 간에 벌어질 세 싸움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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