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없어질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1915년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역사란 국백(國魄)과 국혼(國魂)의 기록이라고 했다. 신채호는 낭가사상(郎家思想), 정인보는 ‘얼’이라는 말로 민족정신을 강조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이들 민족사학자는 근대역사학을 성립시킨 정신적 지주였다. 전문적 교육을 받은 역사학도가 배출된 1930, 40년대에 이르러 실증주의 역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이 등장하면서 근대역사학은 더욱 풍부해졌다.
▷바로 그 시기부터 대한민국 수립까지의 역사를 탈(脫)민족주의적, 실증주의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국가가 형성되는 근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해 충격을 던졌다. 이런 상상의 공동체를 역사 이해의 인식 틀로 삼으면 역사를 단지 규범적, 당위적으로만 파악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잘못된 역사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나라’로 인식하게 되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잃게 된다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혼’의 문제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렇게 되면 좌편향된 근현대사 서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철학·사상의 문제로 치환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나라는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고려말 학자 이암의 ‘환단고기’ 한 구절을 인용해 논란을 불렀다.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가 교훈적이고 실용적인 면으로 빠지지 않도록 가치판단으로부터 초연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를 넘어 역사의 평가를 내리는 데까지 나가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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